“현장에 와보면 덮어놓고 매각하는 것만 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지난 3월 해외 자원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가 정부에 광물자원공사가 보유한 해외 광구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결론을 내리자 광물공사의 한 관계자가 내뱉은 탄식이다. TF는 출범 초기 해외 광구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중심으로 주요 사업에 대한 현장답사 원칙을 천명했었다. 하지만 결국 광물공사 보유 광구는 제대로 된 현장실사도 없이 팔려나갈 운명에 처했다.
광물자원공사 통합안 발표 이후 해외 자원개발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고 있다. 상반기 자원 공기업의 구조조정이 끝나면 하반기에는 원인 규명 작업도 시작된다. 감사원도 2015년 이후 3년 만에 해외 자원개발 재감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막대한 부실을 불러온 자원 공기업 3사의 방만 경영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지만 자칫 다시 ‘낙인 찍기’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산업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상반기에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구조조정안도 마무리 짓고 하반기에는 부실의 책임을 가리는 원인 규명 작업에 착수한다”며 “새로 TF를 꾸릴지, 계획돼 있는 감사원 감사로 대체할지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는 이미 구조조정을 끝낸 광물공사의 해외 자원개발 관계자들을 불러 소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TF를 출범시키며 이제껏 옥석 가리기에 몰두했다. 실제로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자원개발 공기업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있다. 2007년 103%던 광물공사의 부채 비율은 2015년 6,905%로 치솟았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2007년 64%에 불과했던 석유공사의 부채 비율은 2017년 529%(반기 기준)까지 올랐다. 가스공사도 같은 기간 부채 비율이 228%에서 307%로 상승했다.
투자한 만큼 회수가 되지 않던 게 원인이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해외 자원개발에 208억6,000만달러를 쏟아부은 석유공사의 회수액은 96억3,000만달러로 회수율은 46.2%에 불과하다. 가스공사(34.0%)와 광물공사(9.7%)는 더 참담하다. 공기업 전체로는 36.7%였다. 민간기업의 회수율(74.8%)과는 대조적인 성적표였다.
박근혜 정부 이후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것도 이런 이유다. 2015년 국회의 해외 자원개발 진상규명 국정조사가 이뤄졌고 같은 해 11월 감사원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성과 분석을 위한 대대적 감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부는 2016년 민간의 개발 기능을 키우겠다는 내용을 담은 자원개발 추진체계 개선방안을 내놓는다. 정부의 자원개발 예산이 자취를 감췄던 것도 이 시기다. 2016년 자원개발 관련 성공불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가 2017년 들어서야 1,000억원 규모로 되살아났다.
손 놓고 있던 세월 탓에 자원 개발률도 여전히 밑바닥 수준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석유·가스자원 개발률은 15.5%로 2010년(10.8%) 대비 4.7%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프랑스(105.0%·이하 2010년 기준)와 중국(30%), 일본(24.7%)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하반기 시작된 원인 규명 작업이 다시 ‘낙인 찍기’로 흐를 경우 자원개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유가와 주요 광물 가격은 오름세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2014년 11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70달러를 넘어섰다. 동 가격은 2016년 대비 40%, 아연은 56%가량이 올라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원료인 니켈도 공급 부족에 가격이 오르고 있고 코발트는 2년 새 네 배 가까이 뛰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또 뒤져봐야 뭘 캐내지 못했던 이전 조사·감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자원개발과 비리가 등치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결국 자원개발이 필요할 때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