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영희 디자이너 82세로 별세…천상의 런웨이 펼칠 듯한 '한복 세계화' 선구자

한국인 첫 프레타포르테쇼 참가

큰 반향 속 美 등서 잇단 패션쇼




“패션쇼를 하고 싶어요.”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린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사진)씨가 17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그는 평소 “죽기 한 시간 전까지 무대를 지키고 싶다”며 “내가 죽어 관에 있을 때도 누가 ‘선생님 패션쇼 합시다’라고 말하면 벌떡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해왔다. 이씨는 한복 세계화를 국내 최초로 이룬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업주부로 살다가 지난 1976년 마흔에 뒤늦게 한복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의 학비에 보태기 위해 이불 장사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불 홑청을 천연 염색해 자투리 천으로 한복을 만들어 팔았다. 이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레이디스타운에 ‘이영희 한국의상’이라는 이름으로 한복 가게를 열었다.


고인은 한복 세계화를 위해 운명과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전통 복식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석주선(1911~1996)과의 만남을 계기로 전통 한복 연구에 매달렸다. 성신여대 대학원에 입학해 2년간 염직공예를 공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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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80년 10월 한국의상협회 창립 기념 한복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패션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1월 신라호텔에서 첫 개인 패션쇼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그는 이후 평생에 걸쳐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쇼에 참가해 주목받았다. 당시 고인이 선보인 저고리를 없앤 한복 드레스는 ‘저고리를 벗어 던진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20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2004년 뉴욕 이영희한복박물관 개관, 2007년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한복 전시, 2008년 구글 캠페인의 ‘세계 60 아티스트’ 선정 등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우뚝 섰다. 2005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21개국 정상의 두루마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한복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한영아 총감독은 “한복의 아름다움과 정통성, 그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린 대표주자”라고 회고했고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한복이 전통 의상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화로 한복의 개념을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딸 이정우 디자이너를 비롯해 3남매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 발인은 오는 19일이다./심희정·허세민기자 yvette@sedaily.com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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