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反기업 인문학] 돈이 되는 인문학은 惡이다?

■박민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경영에 접목된 철학·예술이

대중을 자본 포로로 만들어"

기업 인문학을 惡으로 규정

정통 인문학은 善으로 대비

미래 대비할 인문학 해법은




독서란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지적 대화다. 물론 이 대화는 독자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며 그 깊이나 확장성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가끔 저자 스스로 대화의 맥을 끊을 때가 있다. 대개는 토론의 여지가 없는, 마치 음모론처럼 세상 모든 것을 하나의 잘 짜인 논리로 재단하는 책이다. 저자의 논리를 그대로 흡수할 준비가 된 독자라면 모를까, 대체로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아가기가 힘들다. 저자의 생각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둘 중 하나다.

‘반(反)기업 인문학’은 생존, 출세, 성공, 경제적 이익 등 목적에 복무하는 수단이 된 기업 인문학을 악, 그에 대비한 정통 인문학을 선으로 가르고 대학부터 출판물, 기업 교육 등 기업 인문학이 대중을 자본의 포로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다양한 논거를 통해 서술한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좌파 지식인이면서 대학에서 CEO 대상 인문학 강좌에 참여하고 삼성사장단 회의에서 강의한 고 신영복 교수, 김호기 교수 등은 자본의 논리에 무릎 꿇은 변절자이며 대한항공과 출판사의 공동 기획으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쓰고 상당한 판매 실적을 올린 정여울은 고유한 정신의 산물도 아닌 자신의 저서라 착각하는 하청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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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업 인문학이 실제로 ‘악’이냐는 것이다. 책에서도 기업 인문학 시대를 본격화한 인물로 꼽은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자본과 인문학을 결합하며 상아탑 속에 고립됐던 인문학을 대중 속으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인간의 욕망을 디자인하고, 자극하는 마케터로서 잡스는 그의 인문학적 지식을 십분 활용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광고로 PC업계의 1인자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양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 권력으로 대중의 무의식에 각인시킨 것 역시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힘을 발휘한 결과다. 이후 기업의 CEO들은 이른바 철학, 역사, 예술, 문학 등 이른바 ‘문·사·철’을 경영철학과 접목하며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인재개발 비용을 투입해 임직원들에게 인문학 강좌를 듣게 하고 빌 게이츠 같은 CEO들은 스스로 독서 목록과 서평을 공개하며 하나의 문화 권력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모하고 발전하면서 생명력을 키운 것이다.


어째서 인문학은 아무런 목적 없이 그 자체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대학 시절 수강한 한 시인의 문학 강좌를 예로 들어볼 법하다. 그 시인은 학생들에게 “어째서 배고프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경영학 같은 실용 학문만을 전공으로 택하는 학생들을 질타하기 위해 내뱉은 그의 말 속엔 ‘인간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이 당위 속에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위 정통 인문학을 꿈꾼다는, 탑에 갇힌 인문학자와 저술가들의 당위가 학문의 세계에서 인문학을 섬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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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은 썩는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학문 역시 시대에 맞춰 발전해야,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최근 불어닥친 ‘빅 히스토리’ 열풍, 4차 산업혁명 담론을 기업 논리에 봉사하는 융합학문의 일종이며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기업 인문학일 뿐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비춘다면 과연 책에서 말하는 정통 인문학은 미래를 대비해야 할 독자들에게 어떤 해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 1만7,000원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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