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누굴 위한 지배구조 개편인가

이상훈 산업부 차장




LG전자 해외법인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 지난 2015년 나온 그의 저서(한국인은 미쳤다)에는 한국 기업의 속살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위계에 따른 복종 체계, 목표를 향한 상상을 초월한 중압감 등은 다른 나라 기업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문화”라고 말한다. 쉬르데주는 한국 기업 특유의 지나친 성과주의와 효율성 추구가 경영에 독이 될 수 있지만 한 치의 예외 없는 일사불란한 조직은 강력한 경쟁력이라는 점도 부인하지 않았다. 자극적인 책 제목은 한국 기업에 대한 경이로움과 우려가 뒤섞인 은유에 가깝다.

굳이 이방인의 촌평이 아니어도 우리 기업이 발 딛고 선 땅은 전쟁터다. 그래서 기업은 평화롭게 운영되기 어렵다. 수시로 출몰하는 난기류를 뚫고 고속으로 비행하는 항공기는 작은 새 한 마리와 부딪혀도 궤도를 벗어나 추락한다. 피 말리는 시장경쟁에서 승리하려면 흐트러짐 없이 총력을 한데 모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요즘 한국 경제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 재계를 둘러싼 공기부터 심상치 않다. ‘오너가 쥐꼬리 지분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한다’는 무분별한 분노와 질시가 자욱하다. ‘반기업’ 정서가 강한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군불을 때면서 이런 양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정책의 경우 차익실현에 몰두하는 소액주주는 선(善)이고 기업 중장기 발전에 제일 관심이 많은 대주주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해 더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밀고 있는 상법 개정안만 봐도 그렇다. 투기자본의 경영권 찬탈을 막을 수 있는 대주주의 차등의결권에는 반대하면서 소액주주에 힘을 실어주는 집중투표제는 찬성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난공불락의 기업들을 누르고 정상에 선 삼성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지배구조’라는 딱지마저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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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화답한 현대차는 헤지펀드(엘리엇)와의 샅바 싸움 끝에 애초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접었다. 정작 비즈니스에서 핀치로 몰리는 판에 현대차가 추가로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은 가늠조차 힘들다. 차후 정부의 균형 잡히지 않은 정책이 어떤 사달을 초래할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기업경영권이 창업가문의 4세까지 내려오면서 오너가 지분율은 가만둬도 쪼그라든다. 이런 상황에서 타국 대비 높은 상속세율, 지배구조 흔들기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기업 자율로 맡겨도 이런저런 리스크에 노출되기 쉽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긁어 부스럼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기업의 기를 살려도 어려운 것이 경제 살리기다. 하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만 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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