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합병비율 7:3 조정... 글로비스 이익 2,000억 포기할 수도

■ '플랜B' 짜는 정의선 결단 내릴까

관례 깨고 MK 대신 입장 발표

새 지배구조 개편안 진두지휘

소액주주 이익 우선 고려 위해

분할 모비스 가치 높이기 유력

순환출자 해소 방안도 담을 듯

2315A04 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현대차(005380)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그룹 경영 전면에 공식적으로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은 자신이 속한 현대차의 부회장으로서 역할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 전반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시도할 지배구조 개편은 정 부회장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 부회장은 지난 21일 ‘현대차그룹 구조개편안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제하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기존 개편안을 접고 새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정 부회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입장문을 내자 적지 않게 놀랐다. 정 부회장이 그룹 중대 사안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관례대로라면 이 같은 그룹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과 입장 발표는 정 회장이 해왔다.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에서는 신차 차명을 비롯한 모든 주요 사안의 최종 결정을 정 회장이 했다. 정 부회장이나 경영진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할지라도 외부에 발표할 때는 정 회장 명의로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례를 깨고 정 부회장이 직접 입장문을 낸 것이다.


이런 흐름을 볼 때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은 정 부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뿐만 아니라 정 회장 부자가 그룹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핵심이다. 향후 승계 문제도 고려해야 해 정 부회장이 키를 잡고 사안을 챙길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지배구조 개편안을 짤 때 40여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하나를 고른 것으로 그룹 안팎에 알려져 있다. 당시 정 부회장은 승계와 연결하지 말고 순환출자 고리부터 끊는 데 집중하는 한편 대주주 일가보다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높이는 방안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은 이번에도 소액 투자자의 주주 가치를 높이면서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방안을 연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승계는 이번에도 ‘차후의 사안’으로 미뤄둘 것으로 관측된다. 정 부회장도 입장문에서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해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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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향후 선택할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3개 정도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012330)의 분할 비율과 현대글로비스(086280)와의 합병 비율을 재산정하거나 분할 모비스를 증시에 상장해 시장가치를 평가받은 후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추진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엘리엇의 요구나 그간 증권가에서 제기돼왔던 지주사 전환도 대안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이 중 비율 재산정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분할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을 6대4로 산정했지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7대3이 적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모듈과 AS 부품이라는 알짜 사업을 보유한 만큼 분할 모비스의 가치를 더 높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단은 결국 정 부회장의 몫이다. 분할 모비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수록 현대글로비스 주주 입장에서는 손해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쥐고 있는 최대주주다. 증권가에서는 기존 합병 비율을 토대로 분할 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합병하면 현대글로비스 주주들이 1조원 안팎의 이익을 볼 것으로 추산한다. 합병 비율을 조정하면 정 부회장으로서는 2,000억원가량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대신 대주주보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겠다는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증권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엘리엇의 공격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재편 계획을 일단 거둬들인 것은 시장에서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새 방안 역시 일부 주주들은 반대하더라도 주요 자문사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뿐 아니라 향후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성격도 있다”며 “플랜B마저 실패하면 정 부회장으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맹준호·조민규기자 next@sedaily.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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