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은 지난 2016년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2014브라질월드컵 실패를 분석하고 성찰한 바 있다. 당시 언급한 문제 중 하나는 선수 선발의 편향적인 잣대였다. 그는 논문에서 “준비기간이 촉박해 과거 호흡을 맞췄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한 선수에게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 팀 운영과 관련한 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인정했다.
그 선수는 박주영(FC서울)이었다. 홍 전 감독은 취임 당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앞세웠다. 기강이 무너진 대표팀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발언이 1년 남짓한 시간 내내 홍 전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월드컵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2012런던올림픽에서의 성공 경험에 의지해야 했던 홍 전 감독에게 박주영은 꼭 필요한 선수였다.
문제는 당시 박주영의 상황이었다. 2011년 여름 프랑스 AS모나코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아스널로 이적한 그는 3년간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며 동메달을 안겼지만 소속팀에서의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의 셀타 비고, 잉글랜드 2부리그 왓퍼드 등으로 임대를 떠나야 했다. 브라질월드컵 직전의 박주영은 꾸준한 출전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지 3년째를 보내고 있었다.
조기 소집해 몸을 만들었지만 경기감각은 떨어져 있었고 여러 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결국 박주영은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을 합쳐 113분을 뛰는 데 그쳤다. 공교롭게 출신 대학이 같았던 탓에 홍 전 감독과 박주영은 월드컵 전부터 ‘의리 축구’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홍 전 감독의 선택이 실패로 끝나자 비난 여론은 한층 가열됐다.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는 신태용 현 대표팀 감독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이청용의 선발은 4년 전 박주영과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EPL 크리스털 팰리스 소속인 그는 2017-2018시즌 리그 7경기에 출전해 132분을 뛰었다. 2018년만 놓고 보면 총 25분을 뛰었다. 신 감독도 지난해 10월 유럽 원정 이후 경기감각 저하를 이유로 이청용을 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청용은 월드컵 소집 명단 28인에 포함됐다. 떨어진 실전감각을 고려해도 이청용의 두 차례 월드컵 경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선수 선발의 권한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홍 전 감독은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상황적 특수성을 언급했다. 유럽·남미처럼 수준급 선수의 풀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유럽파의 선발은 대표팀 감독에게 큰 고민을 준다는 것. 신 감독도 “원칙을 깨는 한이 있어도 마지막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며 이청용의 선발에 양해를 부탁했다. 유럽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박지성도 “23명 선수가 모두 월드컵에서 뛰는 것은 아니다. 이청용의 경험은 대표팀의 자산”이라며 선수 선발에 경기 외적인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다.
23일 훈련을 시작한 이청용은 이틀 전 대표팀에 합류하며 “원정 최고 성적(16강)을 거둔 2010남아공월드컵 이상의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22세에 참가한 첫 월드컵에서 그는 2골을 넣으며 영웅이 됐다. 서른 살이 된 이청용은 주변의 의심을 결과로 바꿔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 이청용의 선발로 신태용호는 양날의 검을 집어들었다. 2014년의 박주영처럼 원칙을 깬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검이 베는 것은 상대가 아닌 우리가 된다. /축구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은 2018러시아월드컵 시즌을 맞아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