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80일간 무정부 상태였던 이탈리아가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 구성에 착수하면서 유럽연합(EU)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시장에서는 새 정부가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대거 실현할 경우 8년째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유럽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를 뛰어넘는 대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로마 대통령궁에서 주세페 콘테(54) 총리 지명자에게 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콘테 지명자는 대통령궁을 나오면서 “새 정부는 ‘변화의 정부’로서 평범한 이탈리아인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콘테 지명자는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이 지난 13일 연정협상을 타결한 후 총리 후보로 추천한 인물로 현재 피렌체대 법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거 연구경력을 부풀렸다는 의혹과 정치경험이 전혀 없다는 비판 속에 낙마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무난히 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대통령의 내각 승인과 의회 투표가 남았지만 오성운동과 동맹의 합계 의석이 상하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 의석 수는 상원 320석 가운데 167석, 하원 630석 중 347석이다.
문제는 포퓰리즘 정부의 새 정책이 퍼주기식 복지와 반(反)난민·반EU로 점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콘테 지명자는 지난 총선 당시 저소득층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 등 오성운동의 공약을 수립하는 데 관여한 인물인데다 콘테 내각에 오성운동·동맹 대표가 입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양당이 합의한 국정운영안에는 소득 수준에 따라 15% 또는 20%의 단일세율을 채택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는 등 연간 약 1,000억유로(126조원)를 투입하는 계획이 담겼다. EU가 설정한 재정지출 상한선 조정, 50만명의 불법 난민 추방 등 EU와 마찰이 예상되는 정책도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재원 마련 없이 복지정책에 매달릴 경우 과거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포퓰리즘 정부의 국정운영안이 시행되면 이탈리아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EU가 정한 상한선 3%의 2배인 5.8%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EU 3위 경제대국이면서 유로존에 포함된 이탈리아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면 EU에 그리스 사태와 브렉시트를 뛰어넘는 대혼란이 예상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탈리아의 급진적 포퓰리즘 정부 출현은 최종적으로 유럽의 결속을 깨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