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기자의 눈]한국 외교, 왜 이러나

박효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취소’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북미 정상회담은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말한 지 이틀 만이었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정에 허겁지겁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정부의 정세 인식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든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 취소 직전에 해당 사실을 인지했음을 25일 시인했다. 백악관은 주미 한국대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서한을 전달했으나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주미대사관으로 통보돼 전달되는 데 약간 시차가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백악관의 발표 후 30분이 지난 뒤 나온 청와대의 첫 반응은 “의미를 파악하려 시도 중”이라는 대변인의 당황한 메시지였다.


사실 석연치 않은 조짐은 일찍부터 나타났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22일(현지시간) 단독 정상회담이 예상 밖으로 흘러가면서다. 단독 정상회담은 별도의 배석자를 두지 않은 채 양 정상이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상회담의 꽃’이다. 그러나 양 정상의 단독 회담은 20분 만에 끝났다. 통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양 정상이 각각 5분씩 이야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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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안인 북미 정상회담에 관해 5분간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을까. 문 대통령이 남북미 3국의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확답을 듣지 못한 것도 부정적인 신호였다. 이미 실무적으로 합의가 끝난 내용을 확인하는 성격이 강한 정상회담에서 일어난 일치고는 이례적이다.

결정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일관된 메시지를 생각하면 북미 정상회담 취소 통보는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안 할 것”이라며 “6월에 회담이 진행되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미 간 공통의 이해는 최후까지 가야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나는 도박사가 아니다. 회담이 열릴지에 대해 예측하고 싶지 않다”고 확답을 피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기자들이 주고받은 대화 분위기,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보면 북미 회담은 성사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런 청와대의 정세 인식에 비춰 보면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고 밝힌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에 해당 사실을 늦게 알렸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이 총출동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상기류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감지할 수 있었으나 감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99.9%의 숫자로 대표되는 과도한 낙관론이 정부의 눈을 가리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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