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궤도를 벗어났던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온 가운데 북미는 28일부터 판문점에 실무협상팀을 보내 핵심의제 사전조율을 시작했다. 쟁점은 단연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와 북한의 요구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안전보장(CVIG)’의 맞교환에서 서로 원하는 속도와 범위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실무협상에서는 최근 기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미국이 북한에 강력한 비핵화의 선제 조치로 보유한 핵탄두 전체를 국외로 반출할 것을 요구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좌우할 이번 협상에 미국은 북핵 전문가인 성 김 주필리핀 대사를,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투입했다. 장소 역시 긴밀한 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보안 수준이 높은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정했다.
이번 북미 실무협상의 1순위 과제는 비핵화 접점 찾기다. 그간 북미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온 비핵화의 접점은 미국 입장 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 취소’ 충격요법에 놀란 북한이 이미 지난 25일 ‘트럼프식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담 취소 발표 직전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리적으로 단계적(접근법)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핵 개발 초기 단계였던 리비아와는 수준이 다른 북한의 핵 현실을 반영해 기존 일괄타결 방침에 최소한의 유연성을 더할 용의를 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큰 틀에서의 합의는 이미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디테일의 악마’라는 말처럼 세부적인 비핵화 이행조건을 놓고는 합의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대한 빠른 속도의 비핵화 이행을 요구하면서 무엇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당장 가시적이고 강력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일본 교도통신은 28일 판문점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핵탄두 국외반출 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기존 핵시설 해체나 광범위하고 세밀한 사찰 등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핵탄두 반출은 이른 시일 내 이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에는 20개 정도의 핵탄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들 핵탄두가 정권의 목숨인 핵 무력 완성의 상징과도 같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CVID에 상응하는 조치로 CVIG를 이미 언급했지만 미국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북한은 핵탄두를 한꺼번에 내놓지 않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 안보와 직결된 무기를 국외로 먼저 반출하는 방안을 미국 측에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북한은 실무협상 테이블에서 체제보장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설명한 남북·북미의 상호 불가침 선언, 남북미 종전 선언 등을 중간해법으로 거론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한국 정부가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어서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 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양측이 비핵화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판문점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 선언과 로드맵 설정, 미국의 검증’이라는 3단계 절차를 문서화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미 협상팀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 폐기를 선언하고, 그 일정과 방법을 담은 로드맵을 정한 뒤 미국이 이를 검증하는 식으로 단계를 구체화하고 문건으로 남기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보상은 미국의 직접투자보다 우선 제재 완화에 대한 요구로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예고 후 한국·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관심을 보였지만 미국과의 직접 거래에 대해서는 아직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의 강도 높은 제재만 완화되더라도 북한 경제가 자력으로 일정 수준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