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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정의 톡톡 월드컵]<2>이승우 같은 겁없는 선수가 변수를 만든다

수동적인 한국 축구팀에 '활력'

과거 이동국·이천수 역할 기대

'3전 전패' 비관론 깰 좋은 변수

이승우가 29일 축구대표팀 공개훈련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연합뉴스이승우가 29일 축구대표팀 공개훈련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긴장이나 걱정은 없었다. 설렘과 자신감만 보였다. 이승우라는 한국 축구의 독보적인 캐릭터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A매치 데뷔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선배들에 뒤지지 않는 세련된 기술과 영리한 플레이는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줬다. 경기 내내 큰 박수가 그를 쫓았다.

지난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장현수·이재성 등 부상이 있거나 체력이 떨어진 주전들을 대거 명단에서 제외했다. 자연스럽게 테스트에 초점을 맞췄다. 선발 명단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것은 4-4-2 포메이션에서 왼쪽 윙어로 출전한 이승우였다.


경기 초반 손흥민·황희찬과 동선이 겹치고 상대 협력수비에 막히던 이승우는 전반 15분을 기점으로 살아났다. 움직이는 영역을 하프라인 부근까지 내려 공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신보다 20㎝ 이상 큰 선수들로부터 공을 지켜냈다. 공간이 생기면 특유의 리듬으로 돌파해나갔다. 전방에서 적극적인 투지로 공을 빼앗고 상대 선수와 기싸움을 펼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후반 15분 손흥민의 선제 결승골을 패스로 도왔다. 골키퍼가 손 쓸 수 없는 손흥민의 슛도 좋았지만 자신에게 수비수를 유도하고 간결하게 연결을 한 이승우의 축구 지능도 빛났다. 후반 40분 교체돼 나오는 이승우에게 3만3,000여 관중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신 감독은 부임 후 한 번도 이승우를 호출하지 않다 월드컵 직전 소집했다. 20세 이하 대표팀 시절부터 관찰해온 이승우의 능력, 그리고 성격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경쟁과 자극을 가져다줄 것이라 예상됐던 이승우는 경기장 안팎에서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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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 10년은 뛴 선수 같다”는 신 감독의 말처럼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선배들과도 거리낌 없이 섞인다. 워밍업 때 제일 선두에 서서 분위기를 이끄는 것도 손흥민과 이승우였다. A매치 데뷔전에서도 ‘부담감이 뭐죠?’라고 말하는 듯한 활약을 했다. 그는 “A매치 데뷔를 위해 이적을 했다”며 강한 목적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승우는 한국 사회가 지닌 성향과 이질감이 큰 선수다. 주목받는 것을 즐기고 그럴수록 더 좋은 경기를 펼친다. 파격적 염색이나 귀걸이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훈련 시작 전 감독이 말할 때 모두 열중쉬어 자세일 때 홀로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있다. 재능만큼 독특한 돌연변이가 등장하자 이른바 ‘싸가지론’이 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창의성은 그런 자유로움이 동반하는 결과물이다. 신 감독도 “승우 같은 선수가 10명, 20명이면 힘들겠지만 한둘이면 괜찮다. 의외로 지킬 것은 지키는 선수”라며 이승우에게 책임 있는 자유를 허락했다.

한국 축구는 수동적이다. 선수들은 자기 생각보다 감독의 지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상대의 변화에 끌려간다. 예측이 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대가 생각하는 뻔한 축구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이승우 같은 패기만만한 선수의 도전적인 플레이다. 1998년의 이동국, 2002년의 이천수, 2010년의 이청용이 그랬다.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예상하는 비관적 분위기를 깨려면 변수가 필요하다. 이승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축구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은 2018러시아월드컵 시즌을 맞아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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