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한국경제의 비극

美 통상보복 전방위 확대에도

쿼터제 구걸 등 수세적 대응만

아마추어 통상정책 후폭풍 예고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미국의 승용차 관세는 2.5%이고 지난해 우리 자동차의 대미 수출액은 146억달러로 대미 무역흑자의 72%를 차지한다. 한미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미 관세가 철폐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유럽연합(EU)·일본보다 우리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충격은 더 크다. 미국 측이 지난 4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할 때부터 이러한 전개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2017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내에 ‘무역제조업정책처(OTMP)’를 설립, 직접 제조업보호정책을 기안해 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1962년 무역확장법상의 국가안보조치권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발동할 것을 명령했다. 이 행정명령에서는 ‘철강, 알루미늄, 차량, 항공기, 조선 및 반도체 산업이 미국 제조업과 방위산업의 핵심적 기반’이므로 이를 보호할 것을 선언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도 “철강뿐 아니라 반도체, 조선, 차량, 알루미늄 산업은 무역확장법에 의거해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는 해석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다. 2017년 7월 행정명령에서는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제품’의 공급망이 수입에 의존하면 유사 시 대응능력을 떨어뜨리고 비우호적 국가들의 개입 가능성을 증대시키므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제품에는 결국 전자·기계·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이 포함되므로 제조업 전반으로 무역확장법을 확대 적용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이제 미 상무부는 270일 이내에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이미 예견된 수순이고 지지부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멕시코를 압박하고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국·중국·일본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백악관이 꺼내 든 카드인 만큼 상무부는 한두 달 이내에 신속히 평가를 내릴 것이다. 오는 7~8월께면 지난번 철강 관세의 경우처럼 주요 자동차 수출국들을 대상으로 25% 관세와 쿼터제 수용을 맞보기로 제시하며 압박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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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철강 수입물량을 70%로 줄이는 쿼터제를 수용하고 관세를 면제받은 바 있다. 공산품에 대한 쿼터 제도를 협정체제로 인정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임에도 우리가 최초로 나서 이를 승인했으니 미 측으로서는 유용한 국제 선례가 탄생한 셈이다. 이제 우리가 자동차 관세를 면제받으려면 60~70% 수준의 수출쿼터를 수용해야 한다. 자동차 다음에는 선박과 반도체에 대한 관세와 쿼터가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번의 한미 FTA 재협상 타결로 한미 통상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공언했다. 도대체 한미관계에서 무슨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말인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적인 통상보복에 대해 또다시 실효성 없는 WTO 제소 방침만 되풀이할 것이다.

올 초 한미 FTA 재협상에서 정부는 철강 관세라는 좁은 이슈 하나에 매달려 미 측의 의도대로 쿼터제를 공식화해주고 자동차·의약품 분야의 비관세장벽 해소를 100% 수용하는 한편 장기적인 대미수출 유망품목인 화물트럭 분야도 미 측의 관세철폐 의무를 20년이나 연기해줬다. 미 측의 환율시장 개입 내역 공개 요구도 5월 초 후속조치로 수용했다. 그런데도 이제 양자 간에 이미 철폐된 자동차 관세 이슈를 놓고 다시 협상해 쿼터제 수용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지난해 4월부터 예견된 승용차 분야의 국가안보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한 합의도 한미 FTA 재협상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적 통상정책의 끝판왕을 보는 듯하다. 이 상황에서는 쿼터제를 수용하고 대미투자를 늘려 현지생산 체제를 가속화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것도 북한 핵, 안보 비용에서 추가 양보를 해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통상 분야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주체이념 외교와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대미 통상 이슈들을 미리 쉽게 처리해버린 정권이 초래한 글로벌 한국 경제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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