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나는 이렇게 시작했다” / 그린 크리에이티브 창업자 콜 저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6월호에 실린 포춘US 번역 기사입니다.

모든 사업가에겐 전구에 불이 들어올 때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 콜 저커 Cole Zucker는 문자 그대로 전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Interview by Dinah Eng







뉴욕 첫 직장에서 해고당한 콜 저커는 상하이 행 편도티켓을 예약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모험을 하려고 했다. 3 년 후 콜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게 됐고, 사업 파트너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상업용 LED 조명회사 그린 크리에이티브 Green Creative를 설립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차에서 생활하며,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제품을 판매했다. 전시용 여행가방에 담긴 신기술을 선보인 것이었다. 지난해 그린 크리에이티브는 하버 그룹 Harbour Group에 인수됐다. 이 업체 공동 설립자는 지금도 소매업체 월마트 Walmart와 파파존스 Papa John‘s, 제이 크루 J. Crew 같은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나는 중산층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곧 내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타월 사업을 하셨고, 중국과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2003년 나는 베이징에서 한 학기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걸 계기로 전 세계에 모험할 만한 곳이 많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프랭클린 앤드 마셜 대학 Franklin & Marshall College을 졸업한 후, 뉴욕에 있는 푸르덴셜 증권회사에서 채권투자 관리 인턴으로 근무했다. 나는 회사 인턴 프로그램 역사상 최악의 인턴사원이었고, 결국 1년 후 해고당했다. 계좌에 3,000달러 정도가 있었는데, 그 돈으로 상하이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두 개의 더플 백에 옷을 싸 들고, 500달러로 한 호스텔에 8주를 예약했다. 나는 약 한 달간 회계법인과 금융회사들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지인들을 통해 게리 가오 Gary Gao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에버브라이트 엔지니어링 Everbright Engineering의 소유주였다. 이 회사는 다국적 기업에 지속 가능한(sustainable) 건축 자재를 판매하는 공장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게리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외국 직원을 고용하는 것에 이점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중국 시장 내 매출을 늘리기 위해 나를 고용했다. 당시 나는 스물 두 살이었고, 한 달에 5,000위안(연간 약 8,000달러)의 초봉을 받았다.

나는 전혀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출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중국어 사전을 외우곤 했다. 주말에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그들로부터 중국어를 배웠다.

그렇게 3년간 중국에서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내 회사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LED 조명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2%에서 향후 10년간 80%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기사를 본 건 2009년이었다. 내게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오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나는 LED 사업에 뛰어들어 이를 미국에 전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프랑스인 기욤 비달 Guillaume Vidal을 알게 됐다. 그 역시 조명 분야에 종사했다. 우리는 한동안 같이 어울렸지만, 이후 6개월 정도 연락이 끊겼다.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우연히 TV를 켰는데 기욤이 나왔다. 그가 음식채널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그 후 다시 연락이 닿아 함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는 중국에 머물기 바랐다. 나는 세일즈를 하고 싶었고, 그는 연구개발(R&D)을 하길 원했다. 둘 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덕분에, 좋은 기회가 될 공급자와 공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선뜻 투자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회사에 투자할 자금 10만 달러 정도를 저축했고,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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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만 달러 규모의 재고를 주문했고, 가입 첫 달에 1달러를 내면 이를 보관해주는 공용 저장 공간도 알아냈다. 첫 여섯 달은 친구 이름으로 가입을 했고, 그 후 보관 기간이 만료될 때 또 다른 이름으로 바꿔 1달러라는 적은 금액으로 저장 공간을 빌릴 수 있었다.

세일즈 전화는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기욤은 우리가 만든 LED 조명 전구가 전시된 여행가방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전구가 매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상당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일일이 알리고 다녔다.

사무실 건물들은 특히 전구를 많이 사용한다. 나는 엔지니어들이 새벽 4시에 출근한다는 점에 착안해 주차장 밖에 4시 반에 나가곤 했다. 그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준비한 조명을 보여줘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전시된 소켓에 전구를 끼우고, 시연을 하기 위해 여행가방을 콘센트에 연결했다.

사업을 시작한 첫해 연말, 나는 방문판매로 3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초창기에 우리를 거절했던 조명 유통업체들이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직접 물건을 팔지 않는 조건으로, 우리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했다. 우리에게 돌파구가 마련됐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해, 기욤이 유통업체들이 선호하는 혁신적인 LED 전구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 연안지역 매출을 200만 달러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 즈음 할머니가 구형 마츠다3을 사주셨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뒷좌석에 옷들을 걸어놓고, 밤에는 차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매일 세일즈 업무를 시작하기 전, 헬스장에 가서 면도와 샤워를 했다.

매출은 계속 증가했다. 우리는 125만 달러 대출을 확보했고, 엔젤투자자들로부터 25만 달러를 유치할 수 있었다.

2013년부터 우리는 미국 전역에서 영업사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가 작지만 혁신적인 LED 전구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그 때였다.

우리는 현재 상업 LED 전구 시장에서 5% 정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고객은 주로 도매업자들이다. 이들은 대형 소매업체 파파존스와 풋 로커, 월마트, 제이 크루 같은 최종 사용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한다. 우리는 고급 소매업체들의 조명과 밝기는 거의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은 전구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는 1년 6개월 전, 조명기구 부문으로 눈을 돌렸다. 이 부문은 지난해 회사 매출 중 약 26%를 차지했다. 우리는 몇 개월 전 하버 그룹에 사업을 매각했고, 조명기구를 생산하는 인더스트리얼 라이트닝 프로덕츠 Industrial Lighting Products(ILP)와 합병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억 5,000만 달러다.

사업 초기에 우리는 재무제표도 작성할 줄 몰랐다. 한마디로 바보 같았다. 하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그 의지가 빛을 발하고 있다.

▶개발 절차의 간소화 | 콜 저커, 그린 크리에이티브 공동 창업자

구형 전구의 제품 주기는 10년 정도다. 하지만 LED 기술이 급변하고 있어, 품질 수명은 1년에 불과하다. ^조명 대기업들이 생산 라인을 마련할 때, 그들은 국제적인 고객선과 R&D 부서, 인증 담당 직원들을 구축한다. 신제품이 출시되기까진 18~24개월 정도 소요된다. ^반면 우리는 속도전을 앞세워 6~8개월 내에 신제품을 개발한다. 우리는 R&D와 인증, 그리고 마케팅을 담당할 직원을 채용한다. 그리고 이 세 팀은 에너지 스타 Energy Star에 우리가 개발 중인 모든 관련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협력을 한다. 제품이 준비되면, 곧바로 시장에 출시한다.

번역 한주연 claires.dailyproject90@gmail.com

정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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