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경제도 중재자가 필요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북핵 고비마다 조정역할 돋보여

최저임금 등 고용현안 '발등의 불'

타협과 갈등조절의 리더십 절실

청와대가 나서 현장 목소리 챙겨야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집권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했던 대목이 있다. 바로 외교·안보 분야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스트롱맨들에게 둘러싸여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타임지가 문 대통령을 협상가(negotiator)로 소개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때맞춰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로부터 4개월 만에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여전히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 데는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운전자나 촉진자 등 여러 말들이 등장했지만 서로 적대시하던 이들을 한자리에 앉혀 양측의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이야말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최근 북핵 해법이 가닥을 잡아가는 것과 달리 국내 경제는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고용수치나 가계소득 등 경제지표는 매번 발표될 때마다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당장 최저임금만 해도 내년 인상률과 산입범위를 놓고 촉발된 사회적 갈등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노동계는 믿었던 정부에 발등이 찍혔다며 애써 마련된 사회적 대화마저 거부하겠다는 분위기다. 반면 기업들은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며 팽팽하게 맞서 접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당국자들은 경기상황이나 고용여건이 좋아지고 있다며 낙관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으니 호주머니가 얇아진 일반 서민들로서는 서로 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청와대도 엊그제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경기현황을 논의했지만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3대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복지 차원에서 특별한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소득분배 악화가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하면서도 뚜렷한 치유책은 내놓지 못했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품었던 이들이라면 실망하고 답답했을 듯하다.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난관에 부딪히면 방향을 바꾸는 적극적인 중재자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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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한국 경제는 싫든 좋든 시장이 위력을 발휘하는 구조다. 과거 개발시대처럼 일방적인 지시나 코드 맞추기로 일관한다면 정책의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이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현안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쾌도난마처럼 해법을 내놓기 어려운 난제다. 고용주도 다양하고 근로자의 입장도 천차만별인 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요즘처럼 다양한 요구가 폭발하는 시점에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몰아붙이다가는 오히려 시장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당장 다음달부터 시행될 근로시간 단축만 해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준비를 갖췄는지 의문이다. 산업현장마다 미처 대응할 시간이 부족한 탓에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근무 방식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정책 취지마저 퇴색하고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은 외교·안보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구성원의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 정책 중재자로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지금처럼 정부정책이 경제주체 간의 이해관계 대립을 촉발하고 갈등 구조를 심화시키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자면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경제팀이 더 이상 책상에 앉아 숫자나 따지며 갑론을박하지 말고 노동계와 산업현장을 찾아 팔을 걷어붙이고 토론하는 모습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 청와대 역시 최근 경제상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경제 분야에서도 유연하고 결단력을 갖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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