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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춤추는 식물]식물사피엔스

■리처드 메이비 지음, 글항아리 펴냄

열대식물 신경초 '미모사' 건드리면

잎 오므리고 죽은것처럼 축 늘어뜨려

같은 자극 기억 등 지능 연관 가능성

수동적 대상 아닌 자율적 존재 부각

식민지 개척시대 탐험가 전리품으로

낭만·계몽주의선 회화 소재로 등장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인류 문명속

식물의 존재론적 의미·가치 재발견




식물에도 ‘지능’이 있을까. 식물은 그저 제자리에서 크게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만큼 식물과 지능의 연관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13년 한 호주 생태학자가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신경초 미모사 푸디카에 대해 행한 실험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미모사는 건드리면 벌어진 잎들을 재빨리 오므리고 마치 죽어가는 나무처럼 잎과 가지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다. 이 생태학자는 정한 시차를 두고 미모사가 심겨진 화분을 반복적으로 떨어뜨리는 자극을 가했는데, 미모사는 잎을 닫는 반응을 보이다가 4~5차례부터는 마치 낙하해도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듯 더는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보강된 실험을 거쳐 미모사가 동물처럼 학습한 내용을 기억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식물에도 의식과 지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신간 ‘춤추는 식물’은 식물이 수동적인 대상이라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식물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식물이 활력 넘치는 자율적 존재이고 자신만의 사고 과정까지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물이 통증을 느끼거나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하면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 연구와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식물이 놀라운 감각 능력을 가져 화학물질·중력·빛·소리를 통해 정교하게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도 입증되고 있다.



책은 ‘식물 지능’에 대한 논의가 나온 식물학계의 최신 연구뿐 아니라 구석기 동굴벽화 속 식물부터 고대·중세·근대에 인간과 식물이 만나는 주요 장면들을 되짚어보며 식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재발견한다. 인류의 방대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식물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식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뤄왔는지 변천사를 담았다.


4만 년 전 그려진 구석기 동굴벽화에는 생동감 넘치는 갖가지 동물 그림이 담겼지만 식물 이미지는 극히 드물었다. 구석기인들은 식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릴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농경과 함께 고립과 소유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식물은 본격적으로 인류 문명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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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은 식물과 인체의 외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식물 효능을 상상하며 약재로 사용했다. 인체의 모양과 유사해 동양에서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된 인삼이 대표적인 예다. 식민지 개척시대에 자라는 식물은 탐험가들의 전리품이자 수집품이었다. 유럽인들은 특이한 형태를 보이거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제3 세계의 식물을 아끼고 사랑했다.

근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물은 회화의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지중해 지역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는 유럽의 음울한 기후와 빛에 익숙해진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고, 르누아르나 고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올리브 나무를 작품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식물은 대중의 호기심과 과학자들의 연구열을 자극하는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 작가인 저자는 베스트셀러이자 식물학의 바이블로 꼽히는 ‘대영 식물 백과사전’을 썼다. 그런 만큼 책에는 백과사전만큼이나 많은 식물이 등장하는데, 지루하다기보다 식물들이 자유분방하게 춤추는 재미있는 무대처럼 느껴진다. 2만8,0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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