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토요워치] '작가 등용문' 콘텐츠 플랫폼, 인생공감 허브로 뜨다

<'호모 스크리벤스' 나만의 이야기를 팔다>

독자와 직거래 '콘텐츠 플랫폼' 등장

인세 年 1억 넘는 웹소설 속속 나와

개인 브랜딩 효과…강연 등 부수입도

"콘텐츠 비즈니스 P2P모델 대세될 것"

0215A02 토요와치 온라인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글 쓰는 인간).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듣고 말하며 읽고 쓴다. 언어생활 중 가장 비중이 낮은 것은 쓰기다. 10% 정도에 불과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하면 조지 오웰이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수필에서 ‘책을 쓰는 것은 긴 투병생활과 같은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싸움’이라고 표현했을까.

어쨌든 인간은 의사소통을 위해서나 지적·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써서 돈도 번다. 과거에는 글쓰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작가나 지식인으로 불리는 특정 집단에 국한됐으나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일반인도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글로 써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프렌즈에서 캐릭터 비즈니스 리더로 일하는 이은재(39)씨는 오랫동안 기업의 오피스와 문화공간을 만들면서 사무공간과 조직문화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사무공간이 기업의 조직문화를 반영한다고 믿는 그는 미국 IT 기업의 사무실을 답사해 책으로 낼 요량으로 영어에 능통한 친구에게 동행을 권했다. 친구는 이씨에게 책으로 내기 전에 온라인·모바일 공간에서 독자 반응을 먼저 살펴보자며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퍼블리’를 소개했다.

퍼블리와 콘텐츠 계약을 맺은 이씨는 에어비앤비·우버·아마존·위워크·나이키·스타벅스 등 미국 서부에 본사를 둔 유수의 기업을 방문한 뒤 공간 구성과 근무 환경을 정리해 ‘그 오피스, 일할 맛 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씨의 글은 100만원으로 약정된 예약 구매 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800만여원을 끌어모았고 지난해 11월 정식으로 발간됐다. 퍼블리로부터 예약 판매금의 절반가량을 인세로 받은 이씨는 “인세보다 여행 경비가 더 들었지만 퍼블리에 글이 게재되면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 등 개인 브랜딩이 됐다”면서 “일본·유럽편도 퍼블리를 통해 발간한 뒤 책으로 묶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0215A02 주요 글쓰기 플랫폼


퍼블리 이전에도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은 존재했다. 네이버의 ‘포스트’와 다음카카오의 ‘브런치’가 대표적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트래픽을 늘리고 유저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다양하고 질 높은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글 좀 쓰는 이들을 끌어들여 무료로 플랫폼을 제공하는 대신 ‘공짜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나 포스트에 콘텐츠를 올리는 ‘에디터’ 입장에서도 포털의 플랫폼을 활용해 ‘자신을 팔 수’ 있어 윈윈이다.


브런치는 폐쇄형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나 홈페이지 주소와 소개 글을 보내면 검토를 거쳐 승인을 내준다. 브런치에 등록된 작가는 현재 약 2만명에 달한다. 이 중 책을 출간한 작가가 600여명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가 브런치 출신이다. 브런치가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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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선보인 네이버의 포스트는 전문주제의 콘텐츠를 시리즈로 묶어 연재할 수 있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네이버에 가입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여행, 문화·예술, 차·테크, 패션·뷰티, 푸드, 육아 등 11개 카테고리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에디터는 약 1,600명이며 이들의 팔로어 수는 1,900만명이 넘는다. 포스트 글쓰기를 거쳐 단행본을 출간한 이들도 상당수다. 네이버는 멘토링 프로그램과 스타에디터 같은 지원·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에디터들이 콘텐츠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브런치와 포스트는 아직 시범 서비스 단계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리·유통하는 CMS로서 무료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료 서비스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미디엄’도 초기와 달리 월 구독료를 받는 유료 콘텐츠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양자가 직접 거래하는 시대에 돈이 되는 콘텐츠는 뭘까. 소설과 같은 창조형 콘텐츠가 첫손에 꼽힌다. 이미 ‘조아라’ ‘글세상 문피아’와 같은 웹소설 전문 사이트에서 연간 1억원이 넘는 인세를 버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각종 전시회나 행사 내용을 소개하는 체험형 콘텐츠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콘텐츠 사용료를 지불할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같이 경제·경영 분야의 다양한 성공·실패 모델을 분석해주는 큐레이션형 콘텐츠도 독자들의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IT가 발달하면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출판사와 언론사 같은 매개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초연결사회를 맞아 자신의 콘텐츠를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직접 공유하려는 욕구가 늘어나면서 콘텐츠 비즈니스도 P2P 모델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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