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덤프트럭 한대로 출발, 연매출 1.5조 '성공신화' 일군 박주봉 중소기업옴부즈만

기업인 출신으로 첫 中企옴부즈만

40만km 뛴 카니발로 현장 다닐것

박주봉 중소기업옴부즈만/권욱기자박주봉 중소기업옴부즈만/권욱기자



대주·KC그룹 회장인 박주봉 중소기업옴부즈만은 지난 1987년 8톤 덤프트럭 한 대로 무연탄 화물운송을 시작해 총 매출 1조5,000억원이 넘는 기업군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주·KC그룹에는 공기업인 한국종합화학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케이씨, 철구조물 회사인 대주중공업, 단열 이중 보온관 업체인 대주이엔티, 자동차 내외장 부품 기업인 대주정공, 건설사인 케이디종합건설 등 10개 기업이 포진해 있다.

박 옴부즈만은 어린 시절 학교에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잘 곳이 없어 교실에서 커튼을 덮고 잘 정도로 가난했다. 박 옴부즈만은 “학창 시절 부자인 동창집에 놀러 가 당시로서는 귀한 귤을 대접받았다”며 “귤을 먹으면서 부러움에 ‘너희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시니’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청소년 박주봉의 꿈은 오직 ‘사업가’였다.


덤프트럭 한 대로 무연탄을 실어나를 당시 박 옴부즈만은 물량을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매일 2~3시간만 자고 새벽3시에 인천항으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에도 일감을 받으려고 밤늦게 항구로 갔고,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 4~5번 왕복할 때 7~8번 무연탄을 실어날랐다. 이렇게 다른 화물운송 회사보다 두 배 더 많은 매출을 올린 그는 7년 만에 한 대에 불과했던 트럭 수를 50대로 불렸다. 대주·KC그룹의 토대는 덤프트럭 한 대와 박 회장의 굵은 소금땀이었다.

관련기사



박 옴부즈만은 기업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중소기업옴부즈만에 발탁됐다. 전에는 모두 교수 출신이 옴부즈만으로 일했다. 공직을 처음 맡은 그는 “사기업은 문제가 발생하면 물불 안 가리고 하는 편인데 공무원은 급하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라며 기업과 공직사회의 차이를 나름대로 풀이했다.

30년 동안 기업인으로서 쌓아온 그의 실용적이고 현장 지향적인 체질은 중기옴부즈만 활동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차관급임에도 관용차 없이 40만㎞나 뛴 자신의 카니발을 타고 직접 지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인들을 만나고 있다. 박 옴부즈만은 당분간 기업 경영을 형제들에게 맡기고 중기옴부즈만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동생들에게 경영을 일임한 상태”라며 “매일 아침 9시 전에 옴부즈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우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