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한국만 멈춰선 한의약 산업

장인수 우석대 한방병원장·한의과대학장




글로벌 한의약 시장이 뜨겁다. 글로벌 산업 분석가들에 따르면 세계 한의약 산업 시장은 지난 2015년 1,140억달러 규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시장이 오는 2050년에는 5,0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대학병원 의사의 61%가 다양한 건강기능식품과 약초를 처방한다. 중국의 중의약 산업 생산 규모는 167조원을 웃돌며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한방제약 산업은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의약 산업 관련 총 매출액은 2015년 8조2,000억원. 이 중 제조업 분야가 3조3,000억원이고 인삼식품제조업·건강기능식품·한방화장품 등을 뺀 한방제약 산업은 7,200억원 규모다. 우리나라 매출 1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의 같은 해 약품사업 부문 매출 8,200억원(지난해 1조582억원)의 88%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일본·중국의 한방제약 전문회사인 쓰무라제약과 타슬리제약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1조1,000억원과 2조6,000억원이나 되고 매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 비중도 높은 편이다.

한방제약 산업이 살아나면 건강기능식품을 비롯한 건강보건 관련 산업이 동반성장하고 국가 산업발전에도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한방제약 산업은 인접국가들에 한참 못 미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약제제는 하나의 한약재를 끓인 뒤 전분 등 부형제를 섞어 가루약 형태로 만든 67종의 단미엑스제제, 이들을 적절히 섞어 조제한 56종의 처방약(단미엑스혼합제)에 불과하다. 한약이라고 하면 여러 한약재를 넣어 함께 끓인 것을 생각하는데 이와 다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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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한 처방에 들어가는 부형제의 총량이 많아지고 약효가 떨어져 한의사들의 보험 한약 사용이 저조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처방약 품목도 1987년 처음 지정된 후 한 번도 추가되거나 변경된 적이 없다. 국가의 규제와 무관심이 국민 건강 향상과 한의약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일본과 대만은 각각 148종, 350여종(단미제 500여종에도 보험 적용)의 복합한약제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대만처럼 복합한약제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과 보험 대상 처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과도한 문제 제기도 국내 한의약 산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의사들은 의약품으로 인한 간 독성에 비해 훨씬 안전한 한약에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하지만 한약을 직접 처방하는 일본 의사들은 한약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2012년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일본 의사의 80%가 한약제제를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다. 30만명에 이르는 일본 의사 중 24만명 정도가 한약을 사용한 경험이 있고 20%가량은 한약 위주로 환자를 치료한다. 당연히 한약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약 사용에 대한 만족도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필자는 지난해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동양의학회 세미나에 참석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일본 의과대 임상교수 한 분이 “일본 의사들은 양약의 간 독성이 한약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한약이 양약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안전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한약의 간 독성이 이슈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해가 안 가고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안전한 한약제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와 한방제약의 산업 활성화로 한의약과 한방제약 산업의 발전, 더 나아가 국민의 건강권 보장 강화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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