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대한 불신은 사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의혹을 놓고 법관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전현직 대법원 수장들이 ‘적폐청산’과 ‘사실무근’이라며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 사법부가 전현 정권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이다. 이러니 누가 사법부를 공정하다 여길까 싶다. 사회 곳곳에서 판결 불복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재판을 정치의 연장선에서 보는 탓이다.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판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재판이 공정하게 열렸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사법부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헌법 제103조에 명시된 것처럼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관계가 무너진다면 판결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법부의 존재 또는 삼권 분립의 필요성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사법부만이 아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법부가 작금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신뢰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대법원과 청와대 사이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진위를 철저히 가리는 것이 이를 위한 첫걸음이다. 사실이라면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법 불신과 사회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번 기회에 정권에 따라 사법 중립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보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