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면서 속도조절론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둘러싸고 불거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의견충돌에서 일단은 김 경제부총리가 판정승을 거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KDI의 분석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감소 효과는 크지 않지만 내년에도 대폭 올리면 안 된다”로 요약된다. 현상분석은 정부와 상통하지만 결국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을 촉구한 셈이다.
◇공약 강행, 고용에 치명적=KDI는 이번 분석의 상당 부분을 헝가리 사례를 참조했다. 헝가리는 지난 2000~2004년 최저임금을 실질 기준 60% 올린 결과 고용이 약 2% 감소했다. 임금을 10% 올릴 때마다 고용이 0.35% 감소한 셈이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올해와 내년에 각각 15%씩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 감소 규모가 내년 9만6,000명, 오는 2020년 14만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급등 시 2020년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28%가 영향권(최저임금의 1.2배)에 든다”며 “이 경우 고용 감소율이 0.6%까지 뛰어올라 임금 상승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특히 도소매업이나 숙박음식업 등 단순노동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15~64세 1인당 연간취업시간(1999년 기준)은 프랑스가 175시간인 반면 미국은 304시간으로 큰 격차를 보이는데 임금 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프랑스가 0.61, 미국은 0.35로 최저임금 수준과 근로시간이 반비례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자며 시작된 최저임금 인상이 가장 취약한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얘기다. 한국의 임금 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올해 기준 0.49지만 이대로라면 2020년 0.68까지 올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프랑스를 웃돌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 급등이 노동시장 질서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KDI 분석대로 2020년 최저임금 영향권 내 근로자가 28%에 이르면 근로자 10명 중 3명이 일의 종류나 숙련도를 떠나 임금이 같아진다. 열심히 일할 의욕이 사라져 인력관리가 어려워진다. 또 올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한다며 만든 3조원 규모 일자리안정자금 같은 재정 지출도 급증한다.
◇올해 고용 부진은 구조적 요인=KDI는 다만 올해 최저임금발 고용부진 효과는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KDI는 4월 임금근로자 증가폭이 14만명으로 지난해 연평균 증가폭(26만명)보다 12만명가량 적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인구 증가폭이 지난해보다 8만명 줄어 취업자 수 증가에도 5만명 감소 효과를 일으킨 점을 감안해 실제 감소 규모는 7만명으로 추정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구조조정과 도·소매업 생태계 변화에 따른 고용 감소가 컸던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의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제조업과 도소매업·음식숙박업 임금근로자 감소가 크지 않았던 점, 15~24세와 50대 여성, 고령층의 고용 감소폭이 적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헝가리 모형대로라면 올해 고용 감소 추정치가 최대 8만4,000명이지만 현실화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이다.
◇김동연 ‘속도조절론’에 힘 실리나=KDI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에 미친 효과는 크지 않다고 봤지만 궁극적으로 추가 급등은 곤란하다는 ‘속도조절론’을 제시했다. 앞서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신축적인 인상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는 없다”며 이견을 보였다. 최저임금과 고용 간 상관관계를 두고 이렇다 할 분석이 없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 중 KDI가 처음으로 사실상 고용에 악영향이 더 크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김 부총리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은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장 실장에 기울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후속 연구결과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대해 보다 융통성을 가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점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