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때아닌 논쟁을 벌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김 부의장의 “경기는 오히려 침체 국면의 초입 단계”라는 글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김 부총리의 날 선 반박이 곧바로 나왔다. 앞세운 근거는 수출이었다. 김 부총리는 “3~4월 수출이 두 달 연속 500억 달러를 넘은 것은 사상 최초”라며 경기 침체론에 일격을 날렸다. 실제로 5월 수출 지표엔 화려한 기록이 즐비하다. 사상 최초 3개월 연속 500억달러 돌파했고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對) 중국 수출은 역대 2위 실적이었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단언과 달리 올해 수출은 화려한 숫자만큼 그늘이 짙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3대 주력품목의 수출(1~5월 누적기준) 가운데 선박(-42.7%), 무선통신기기(-20.4%), 가전(-17.6%), 디스플레이(-16.8%), 자동차(-4.1%), 자동차 부품(-3.4%) 등 6개 품목이 줄었다. 지난해부터 수출 착시효과를 불러오고 있는 반도체(43.8%)와 국제 유가 상승 탓에 수출이 는 석유(26.6%) 및 석유·화학제품(12.3%)를 제외하면 수출이 늘어난 주력 품목은 일반기계(11.4%)와 컴퓨터(36.3%), 섬유류(6.7%), 철강(0.2%) 등 4개에 불과했다.
실제로 주력산업 일선에선 수출 적신호가 극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선업이다. 조선업은 2016년 시작된 수주 기근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다. 조선업의 특성상 신규 수주가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통상 1년반에서 2년이 걸린다. 2016년 업황 악화로 바닥을 쳤던 수주 실적의 여파가 이제와서 수출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23.6% 증가했던 조선업 수출은 올해 들어 40% 대 감소세로 뒤바뀌었다.
우리 경제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선 지난해부터 북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이미 수출한 제품이 고스란히 재고로 쌓이게 됐다. 이 재고를 소진해야 하는 탓에 수출도 계속 쪼그라들었다. 더욱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악화는 완제품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 생산 자동차가 줄면서 이로 인한 부품 수출마저 동반 감소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도 우리 주력품목 수출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휴대폰과 가전 등의 노동집약적 산업에선 관세장벽을 넘기 위해 기업이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삼성전자 구미공장의 경우 90%가량이 내수다. 한 대형 가전업체 관계자는 “생산 거점이 해외에 이미 자리를 잡으면서 가전의 수출이 계속 줄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일부 수출 업체도 늘어나는 제조 원가 탓에 수출 경쟁력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제패했던 디스플레이도 중국의 맹추격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BOE를 필두로 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LCD 양산에 나서면서 가격이 급락했고, 절대 물량까지도 줄어들었다”며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가 본격화하면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중간재 수출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호황세를 구가하는 반도체가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출 지표와 달리 경쟁력만 놓고 보면 우리 주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무역협회는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중국과 미국에서 수출은 11.7%, 1.8% 각각 증가했지만, 경쟁력 요인으로 분석해보면 되레 4.0%, 1.6% 각각 감소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일본은 경쟁력 요인에 따른 수출 증가율이 1.7% 였고, 대만(1.5%), 미국(4.4%), 독일(4.4%) 등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 제조국가도 마찬가지였다.
김경수 성균과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지난해 반도체를 빼면 우리 주력품목의 시장 점유율이 다 떨어졌고 미국과 중국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수출산업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스러운데 기술혁명에 제조업을 접목하는 노력을 더욱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조민규·김우보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