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채용관 자리에는 인공지능(AI)이 앉아 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구직자는 많아 수만 명이 몰리는 것은 예사다. 그 중에 회사에 꼭 맞는 인재를 찾아야 해 AI 활용은 필수다. 모범 답안은 이미 들고 있다. 기업들은 사내 업무 성취도가 탁월한 인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자질을 모아 빅데이터로 구축해뒀다. 이제 AI는 지원자가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해당 자질이 반영돼 있는 지를 확인한다. 열정과 책임감, 창의성, 사회성, 고객 중심 사고 등 우수 인재의 덕목을 지원자의 성장 과정과 지원 동기, 사회 활동, 직무 경험, 입사 후 포부 등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점수화하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베껴서 제출했는지도 검증한다. 온라인에 떠도는 모범 자소서, 웹 페이지, 공공·학술 자료 등에서 추출한 50억 건의 빅데이터를 통해 ‘복붙’ 자소서를 집어낸다.
기업 채용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철저한 검증으로 공정한 채용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자 지원자 역량을 살피는 데 드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롯데는 올해 상반기 주요 계열사의 공개채용부터 채용관 자리에 AI를 앉혔다. 롯데는 일단 백화점, 마트, 칠성, 제과, 정보통신, 대홍기획 6개 계열사에 시범 적용한 뒤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아직은 도입 초기인 만큼 최종 서류 심사는 사람이 맡는다. 앞으로 자기소개서 데이터가 축적되고 관련 기술과 알고리즘이 정교해지면 반영 범위와 비율을 점차 높일 예정이다. 이후에는 경력사원 채용이나 직원 평가·이동·배치 등 인사 직무 전반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전형에 AI를 도입한 기업은 롯데뿐만이 아니다. SK C&C는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올해 초 왓슨 기반의 자체 AI 시스템인 ‘에이브릴’을 활용한 시범 테스트를 마쳤다. SK C&C는 이번 테스트에 앞서 SK하이닉스에 특화된 반도체 전문지식 및 인재상, 평가기준 등을 바탕으로 평가모형을 설계하고 실제 전형 응시자 800여명의 자기소개서를 활용, 에이브릴 채용 헬퍼를 학습시켰다.
파일럿 테스트에서 에이브릴과 인사담당자의 평가점수 오차범위는 15% 이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시간은 1인당 3초 이내로, 1만 명을 평가하는 데 총 8시간이 들었다. 기존에는 인사담당자 10명이 하루 8시간씩 쉬지 않고 평가해도 7일이나 걸렸던 일이다.
SK C&C와 SK하이닉스는 에이브릴을 신입사원 채용에 활용하기 위해 신규 응시자의 자기소개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추가, 에이브릴 채용 헬퍼에게 학습시킬 계획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면 평가결과의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실제 채용과정에서는 에이브릴의 채점에서 저득점을 기록한 자기소개서의 경우 인사 담당자가 별도로 검증, 일률평가 단점을 보완할 계획이다.
정보기술(IT) 솔루션 기업 마이다스아이티도 신입사원 공채를 AI를 통해 진행한다. 자체 개발한 ‘인에어’라는 이름의 AI 채용 솔루션이 활용된다. 서류전형뿐 아니라 인·적성 검사에 면접까지 인에어가 맡는다. 인에어는 게임 이후에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난 소개팅에서 지갑을 놓고 온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같은 상황 설정 질문을 던지고 지원자의 반응을 살핀다. 실시간으로 지원자의 표정·목소리 변화, 맥박과 혈압, 근육의 움직임 등을 분석한다. 아직 AI 면접은 일부 회사에서만 활용되고 있지만 갈수록 확산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서는 미국 IBM이나 영국 유니레버,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AI를 채용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한 기업 채용담당자는 “면접관들도 인간이다 보니 몇 시간씩 지원자를 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며 “자칫 놓칠 수 있던 지원자의 면모를 AI가 잡아주는데다 채용비리도 근절할 수 있어 기업들이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