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세기의 담판

0815A39 만파



993년 10월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이 압록강 부근에 진출하자 고려 조정은 겁을 잔뜩 먹었다. 초기 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하자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할지론(割地論)이 대두됐다. 이때 서희는 협상을 해볼 것을 주장했다. 적장의 행동으로 보아 거란의 목적이 영토확장에 있지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소손녕은 고려가 거란의 영토인 옛 고구려 땅을 침범했다는 것과 바다 건너 송에 사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침략 이유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국호와 수도를 이어받은 계승국이며 거란에 사대를 하지 못하는 것도 여진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희의 조리 있는 변론에 설복당한 소손녕은 고려가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개척하는 데 동의하고 철군했다. 이로써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이 끝나고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까지 확장됐다. 이것이 우리 외교사에서 빛나는 서희의 담판이다.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굵직굵직한 담판들이 적지 않다. 1982년 9월에 있었던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홍콩 주권 담판도 그중 하나다. ‘철의 여인’ 대처는 덩샤오핑에게 난징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1997년으로 예정된 홍콩 반환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를 알아챈 덩샤오핑은 시간이 되면 홍콩 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협상 결렬에 맥이 풀린 대처는 회담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주저앉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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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28일에는 중국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장제스와 마오쩌둥 간의 충칭(重慶) 담판이 열렸다.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지만 협상은 진통의 연속이었다. 43일간의 지루한 협상에도 불구하고 군축 등 근본 문제는 덮어둔 채 원론적인 합의만 했다가 결국 내전으로 치달았다.

오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담판이 열린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완전한 체제보장(CVIG)’을 요구하는 등 신경전이 치열하다. 두 정상이 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이렇다 할 결실이 없이 원론적인 합의에 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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