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공무원들을 대거 검찰에 수사 의뢰했고 일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징계까지 요구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직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민간위원 등으로 구성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3월 교육부에 해당 공무원 등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 등을 권고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반응했던 공무원들은 권고가 실제 조치로 이어지자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교육부와 함께 적폐청산의 주요 타깃으로 꼽히는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는 빨간 줄이 쳐진 채로 전달되는 청와대 지시사항도 있었다”며 “중앙부처의 그 어떤 공무원이 그것을 거부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부처의 한 공무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을 추진했던 공무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궁지에 몰려 있는데 이런 식이면 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이들도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공직사회는 고위공직자에게 더욱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는 교육부의 설명에 대해서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이날 교육부는 진상조사에 따른 조치를 발표하면서 상급자 지시에 따라야 했던 중·하위직 실무자보다는 고위공직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고위공직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었다면서 정작 최고위층은 왜 뺐느냐”며 “결국 윗선의 지시로 밑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이들만 죄를 다 뒤집어쓰는 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교육부 수사 의뢰 대상 리스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서남수·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들은 이번 조치가 몰고 올 파장도 우려했다. 가뜩이나 공무원들이 책임질 일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는 마당에 책임 회피 경향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보신주의’가 더 확산할 것이라는 얘기다.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부처의 한 서기관은 “현안 때문에 최근 집에 밤11시 전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적폐청산 얘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열심히 하려다 직권남용으로 내몰리기보다는 눈치를 살펴가며 직무유기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실제 직권남용보다 직무유기의 형량이 가볍다. 공무원의 직권남용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직무유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다.
심지어 정부가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사혁신처는 앞서 지난해 ‘위법한 지시는 거부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위법한 지시에 정당하게 저항하고 구성원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영혼 없는 공직자’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부처의 한 관계자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지시가 내려오면 그 지시가 합법한 것인지, 위법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실무자 입장에서는 최초 명령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때도 있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지시자가 가려지지 않으면 행위자가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