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PL)은 그저 가격만 싼 B급 제품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품질과 가격에 따라 브랜드를 분리하고 차별화해 그간 신뢰를 쌓아올리면서 소비자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신세계의 ‘노브랜드’는 아예 독립매장으로 개발될 만큼 PB제품에 대한 인지도나 신뢰도도 높아졌다.
그 가운데 롯데마트가 지난해부터 선보이는 생필품 PL ‘온리 프라이스’ 역시 기존 상품 대비 30% 이상 낮은 가격임에도 높은 품질로 인기를 끌고 있다. 브랜드명에서도 드러나듯 마케팅·할인 없이 항상 정가를 유지해, 무엇을 사든 ‘가성비 갑’ 제품이라는 자신감이 담겨있다.
특히 그간 출시된 200여 개 제품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우유다. 1ℓ들이 2팩을 정가 3,000원에 내놓으면서, 단숨에 경쟁제품을 제치고 PB 제품군에서는 물론 우유 카테고리 1등으로 뛰어올랐다. 올 들어 판매량(320만 팩)이나 매출(48억 원) 모두 PB제품 2위와 2배 내외로 차이가 크다. 특히 PB 규모·종수가 2배 수준인 이마트의 PB 우유제품보다도 많이 팔린다.
같은 유가공제품인 ‘온리프라이스 피자치즈’(8만 4,000개)은 4위다. 또 순위에는 없지만 지난 2월 출시된 ‘온리프라이스 체다슬라이스치즈’는 한 달 만에 서울우유를 제치고 카테고리 1등 제품이 됐다. 정가 기준 41.7% 저렴한 가격임에도 높은 체다치즈 함량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점유율 12%를 넘겼다.
이 세 제품을 잇달아 히트시킨 주인공은 하영희 롯데마트 유제품C 대표MD(팀장)이다. 최근 서울경제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과거 PB 제품에 깔린 소비자의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 팀장은 “시장조사를 통해 일단 가격을 정가 대비 30% 이하로 끌어내리고 기획에 들어간다”며 “재료·유통 마진을 어떻게든 맞추면서도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실제 세 제품의 롯데마트 마진은 10% 미만일 정도로 박하다. 그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제품별 가격도 천차만별인 유제품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시장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가 유제품 PL에 주목한 것은 둘째 육아휴가 때다. 영유아기 많이 먹이는 치즈 가격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이라던 우유가 실제 사러 가면 왜 이리 비싼지 의문이 생겼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바로 유제품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첫 제품인 우유는 국내 업체와 협업해 반년 만에 선보일 수 있었지만, 체다 슬라이스치즈는 출시까지 꼬박 2~3년이 걸렸다. 세계 최대 유제품 기업으로 꼽히는 뉴질랜드 폰테라와의 첫 거래인 탓이기도 했고, 폰테라가 요구하는 수준의 임가공 설비를 국내에 갖추는 것에만 1년가량 소요됐다. 특유의 노린내와 짠맛을 한국화한 레시피를 만드는 데도 반년 이상 걸렸다.
하 팀장은 “구매패턴을 분석해보면 유제품을 가장 많이 사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챙기려는 40~50대 중장년층인데, 먹는 양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니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대용량 벌크제품을 많이 사죠. 실제 주부들은 우유 같은 걸 사면 10~100원 단위 가격변동에도 민감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일상 소비재는 품질이 높으면서도 가격이 낮은 하향 평준화, ‘디스카운트의 시대’가 옵니다. 온리프라이스 제품이 바로 그 결과물”이라라고 자신했다.
요즘 그가 준비하는 것은 스트링 치즈, 그리고 원재료 가격이 일반보다 20% 비싼 유기농 아동치즈다. 그는 “언젠가 만난 외국인이 ‘한국 사람은 가공치즈만 먹지 않냐’고 물어 자존심이 확 상한 적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잘라먹는 모짜렐라 치즈 정도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유기농·저염 성분으로 최고 품질의 자연치즈를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고 싶다. 업계 유가공제품 가격이 품질·맛 대비 천차만별인데 시장 가격의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