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파이낸셜포커스] 금융위에 국제소송 맡겨놓고…법무부는 뒷짐

<ISD 첫 패소…정부 부실대응 논란 확산>

부처간 긴밀한 협업 안보이고

담당한 부처만 독박 써야할 판

실무자 잦은 교체…전문성 뚝

"韓, 만만하다" 낙인이 더 걱정

1215A10 국가별 ISD 현황



우리 정부가 이란 다야니 가문과 벌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처음으로 패소하면서 정부의 소송 대응 과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ISD의 경우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이 패소하는 경우가 많아 장차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해외 기업들의 ISD 파상 공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ISD 대응조직 구성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이란계 가전회사인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지난 2015년 9월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소송을 내자 즉각 관계부처 합동으로 협의체를 만들면서 금융위를 주무부처로 지정해 소송 업무 전반을 관할하도록 했다. 금융위 산하 금융공기업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옛 대우전자 지분을 보유하면서 매각 작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 부실채권기금도 투입돼 금융위가 사건 진행 과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영국계 로펌인 ‘프레시필즈’와 율촌 등에 지급한 수임 비용 약 63억원도 금융위 예산에서 빠져나갔다.


금융권과 법조계에서는 국제 통상 및 소송 전문기관이 아닌 금융위가 ISD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결과적으로 소송 전략 수립에 실패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잘 아는 것과 그 사건에 대한 법 조항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의미”라며 “정부 측에서 법무부가 주도적으로 일을 맡는 게 나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ISD 공세는 현재 법무부가 주무부처 역할을 맡아 대응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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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소송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계속해서 바뀌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금융위에서 이 건을 맡고 있는 과장급 이상 실무진은 소송이 시작된 2015년 이후 정기 인사에 따라 모두 교체된 바 있다. 자연히 업무 연속성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이란 ISD 합동 대응단에 소속된 정부의 한 관계자는 “ISD 절차가 워낙 복잡하고 소송가액도 크지 않아 로펌이 주로 일을 맡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경과를 보고해주는 식으로 대응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향후 해외 기업들의 ISD 파상 공세가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통상전문 변호사는 “ISD는 보통 투자자 보호를 위한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그런 국가를 중심으로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건 이후 ISD 제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어 정부의 사전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ISD 분쟁에서 정부 패소로 결론이 난 153건 중 주요 선진 국가의 패소 건수는 캐나다 4건, 스페인 2건 등 총 6건에 불과했다. 미국의 경우 패소는 단 한 건도 없고 10건의 승소 기록만 갖고 있으며 중국조차 패소 기록 없이 승소 1건만 기록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소송은 상호 독립적이어서 이번에 졌다고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대해 ‘ISD 한번 해볼 만한 나라’라고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게 부담스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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