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종전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전쟁

신경립 국제부장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끝나면

무역전쟁 전선 확대 집중할 것

한국 또다른 생존 시험대 직면

신경립 부장



2018년 6월12일. 결국 이날이 왔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가 북한 정부 수립 70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날, 그리고 아마도 지구상에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불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날이다.

핵심의제인 비핵화를 둘러싼 양측 이견이 좁혀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회담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좋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는 두 ‘예측불허’ 지도자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면 이들은 적어도 성공적인 첫 단추를 끼우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 68년 만에 냉전의 유물인 정전체제를 끝내기 위한 종전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진부하지만 ‘세기의 담판’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뜨겁다. 한국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난 3월9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로 북한 비핵화를 놓고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진 수 싸움은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한반도의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이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자 세계 지정학에 있어서도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북미회담을 핑계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싱가포르로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채 전 세계로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새로운 전쟁, 바로 무역전쟁 얘기다.


3월8일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막이 오른 무역전쟁은 이후 한반도 이슈에 모두가 정신을 빼앗긴 3개월 동안 어느덧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유럽연합(EU)·일본으로까지 전선을 넓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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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의 암운은 지난주 말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들의 회담마저 위협과 비난이 난무하는 ‘격전지’로 바꿔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세계 각국은 미국을 ‘돼지저금통’으로 여기고 돈을 털어가는 도둑들이나 다름없었고 졸지에 동맹국에서 강도로 몰린 캐나다·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일본 등 6개국 입장에서 미국이 투척한 관세는 “모욕적”이었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 3개월 동안 고조돼 온 갈등이 글로벌 교역 시장에서 벌어질 본격적인 전쟁의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발 무역분쟁이 진전돼온 이 기간 트럼프 대통령은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만남에 신경을 쏟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지상 최대의 이벤트가 일단락된다. ‘디테일’의 협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지만 가장 주목받는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당분간은 자신의 본연의 과제인 무역 이슈에 집중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당장 트럼프 정부는 오는 15일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중국산 첨단기술 제품 목록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관세 대상국도 아닌데 남들끼리의 다툼이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산하는 무역전쟁의 불길을 피할 길은 없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각국의 관세장벽이 높아지면 국제 교역은 금융위기 당시와 같은 수준인 최대 9%까지 위축될 수 있다. 교역 위축은 곧 경기 하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이미 23% 감소한 글로벌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더욱 쪼그라들 것으로 우려된다. 바깥에 비바람이 치는데 한국 경제가 버틸 여력이 있을까. 국내 제조업 가동률은 이미 1·4분기에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게다가 미국은 철강 수출 쿼터제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 지 한 달 만에 이런저런 딴지를 걸며 추가 공세를 벌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으로 모두가 들뜬 시점에 굳이 이 질문을 던져본다. 이제 막 전쟁을 끝내려는 한국은 또 다른 전쟁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돼 있는가.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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