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조국인 독일이 통일되기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서독 군대에서, 제 사촌은 동독 군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핏줄을 공유하는 가족임에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유학하던 시절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TV로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독일이 그랬듯 한국에도 완전한 평화가 정착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화그룹이 주최하는 ‘한화클래식 2018’의 초청을 받아 내한한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51·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전할 수 있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카운터테너는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를 뜻한다. 숄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조차 생소했던 카운터테너를 성악의 한 영역으로 당당히 자리 잡게 한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숄은 오는 14일 천안예술의전당과 15~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영국의 바로크 전문 앙상블인 ‘잉글리시 콘서트’와 협연한다. 이들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헨델·퍼셀·비발디 등 영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로크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화클래식은 한화그룹의 클래식 공연 브랜드로 지난 2013년 시작돼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벌써 다섯 번째 내한 공연을 목전에 둔 숄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현대 도시인 서울의 한복판에 경복궁이나 한옥마을처럼 전통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게 너무 놀랍고 신기하다”며 “최근 내가 직접 작곡한 음악의 뮤직비디오에 쓰려고 어제 경복궁과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놓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번 내한 공연에서 한국 관객들을 위한 앙코르송으로 ‘아리랑’을 준비했으니 기대해도 좋다”며 미소 지었다.
숄은 카운터테너라는 낯선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음악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도 들려줬다.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서두르지 말고 항상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씀을 늘 해주셨어요. 사실 제안이 들어오는 공연은 다 하고 싶은 게 음악가의 마음이에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을 통해 아무리 멋있는 역할이라도 저에게 무리가 될 것 같으면 포기할 수 있는 참을성과 인내를 배웠어요. 1년에 40개 정도의 공연만 소화하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항상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네요. 돌아보면 단거리 스프린터가 아니라 마라토너 같은 자세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숄은 카운터테너로의 당당한 자부심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남자는 강해야 하고 여자는 항상 순종적이야 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편견”이라며 “무대에서 카운터테너로 노래할 때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해방감을 느끼고는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음역을 오간다고 해 여자로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카운터테너는 음악에 대한 나의 감정과 열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숄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잉글리시 콘서트에 대해서는 “별것 아닌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활기차게 재해석하는 능력을 지닌 오케스트라와 작업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나 다름없을 정도로 과분한 일”이라며 “우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듣다 보면 관객들도 행복하고 소소한 재미를 안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진제공=한화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