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수차례 거론한 ‘트럼프식 비핵화’는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되 핵탄두·핵물질을 조기에 반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북한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로의 핵 반출을 언급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맹비난하면서 북미가 제3국으로의 핵 반출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단기적으로 일부를 해외 반출할 수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에는 비핵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오크리지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핵·원자력 연구단지가 있는 오크리지는 과거 리비아의 핵 시설과 핵 물질을 보관한 곳이다. 이는 북한과의 핵 협상 역시 리비아처럼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북한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북한의 핵탄두 국외 반출이 북미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목표로 북한에 핵탄두의 국외 조기 반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핵·미사일 전면 반출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보도 직후 백악관은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추측성 보도”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핵무기 조기 반출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카자흐스탄식 비핵화 모델’을 보고받았다고 보도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당시 샘 넌 전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이 주도해 ‘넌루가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델의 핵심은 핵무기 외부 반출이다.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1,000여기와 전략 폭격기 등을 러시아로 내보내고 핵 전문가들 또한 전직·재취업시켰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를 제 3국인 영국이나 프랑스로 반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최근 북핵 해체를 위해 영국에 기술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즈피드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보수당 지지단체 만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핵·미사일 해체를 위해 영국의 핵무기 전문지식을 이용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 또한 영국과 다각도의 접촉을 시도했다. 북핵 6자회담 차석대표인 정연두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은 지난달 영국을 방문해 비핵화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또한 지난달 영국을 찾은 바 있다.
/싱가포르=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