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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정의 톡톡 월드컵] "난 거짓말쟁이" 캡틴의 진심에 응답한 팬심

<4> 여론 반전시킨 기성용

"어차피 3패" 낮은 관심·비관론

솔직 인터뷰 후 "혼낼때 혼내도

끝까지 응원하자" 열기 재점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묵묵히 훈련하는 기성용. 2018러시아월드컵은 주장으로 맞는 첫 월드컵이자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다. /연합뉴스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파르타크 경기장에서 묵묵히 훈련하는 기성용. 2018러시아월드컵은 주장으로 맞는 첫 월드컵이자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다. /연합뉴스



2018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객관적 전력에서 우리보다 앞서는 팀들을 상대로 결과를 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낮은 기대치와 높은 비관론에 더 힘들어한다. ‘어차피 3패’라는 여론, 대규모 원정 응원단도 불발된 식은 열기 속에 신태용호는 사흘 뒤 벌어질 첫 결전을 준비 중이다.

다행히 최근 분위기는 달라지는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 대표팀이다. 혼낼 때는 혼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응원하자”는 댓글과 우호적 정서가 발견된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진심을 표현한 인터뷰가 분기점이었다.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뒤 기성용은 “달라질 거라고, 믿어달라고 얘기해왔다. 그런데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그동안 “팬들이 믿음과 성원을 보내준다면 할 수 있다”며 비관론으로부터 팀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스트리아 캠프에서의 첫 훈련 때는 이례적으로 15분 동안 선수들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럼에도 부진이 거듭되자 주장으로서 안고 가는 책임감과 부담감의 무게를 숨길 수 없었다. 4년 전 브라질에서의 실패 후 겪어야 했던 엄청난 질타를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는 기성용은 그 공포가 다시 엄습해오자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솔직한 인터뷰가 여론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비관론 뒤에 숨어 있던 ‘부채의식’이 움직인 것이다. 기성용은 13일 러시아 캠프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첫 훈련 후 “팬들의 동정을 사기 위해 한 얘기는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답답한 심정에 꺼낸 솔직한 얘기였다는 것인데 진정성에 세상이 움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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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많은 주장의 역할이 그랬듯 말 한마디의 무게는 실로 크다. 한때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로 대표팀의 기강을 뒤흔든 적도 있었던 기성용이지만 그래서 대표팀에 대한 애착과 헌신도 커졌다. 그가 대표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손흥민(토트넘) 이상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팀 내 비중이 크다. 보이지 않는 역할도 크다.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총대를 메고 신태용 감독에게 직접 요청할 정도로 팀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볼리비아전 인터뷰는 그가 팀 외부와도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기성용에게 이번 월드컵은 특별하다. 주장으로서 맞는 첫 월드컵인 동시에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다. 지난해부터 그는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날 것임을 예고했다. 만 19세이던 2008년 처음 대표팀에 입성, 10년의 세월 동안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도 가입한 그는 2010년과 2014년 두 번의 월드컵에서 환희와 절망을 모두 경험했다.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월드컵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환희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월드컵 첫 경기를 앞두고 기성용은 다시 냉정해졌다. 지금까지 해온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로 과정을 평가받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극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운 주장의 한마디는 이번에도 무게감과 진심이 있었다. “월드컵은 소중한 기회입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자신을 더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지막 준비에 집중하자, 우리는 잘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은 2018러시아월드컵 시즌을 맞아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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