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취임 후 1년간 추진했던 정책의 성과에 대해 이같이 자평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표현에 비춰보면 취임 2년차를 맞는 김 위원장은 앞으로 재벌개혁의 고삐를 더욱 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포지티브 캠페인을 통해 독려만 했었다면 앞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 국민적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면 정밀 타격도 불사할 모양새다. 이날 대기업 지배주주 일가에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보유 지분을 매각하라고 주문한 게 대표적이다. 현재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중 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20~30%(상장사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에 적용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모두 20%로 일괄 적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기준을 20%로 단일화한다고 해서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분 매각이 어렵다면 가능하면 빨리 계열분리 해 주시고 독립적인 거래 관행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특히 그는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업종을 핵심사업과 관련 없는 계열사로 규정하고 “관련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생존기반을 상실하는 일들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산권 침해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해당 업종들이 일감 몰아주기 제재의 예외사유인 효율성·긴급성·보안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SI업종을 예로 들며 “선진국의 다른 기업집단에서 각 그룹 마다 SI 업체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건 처리 방식도 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강도를 높인다. 김 위원장은 “기존의 개별 신고 사건에 대한 단편적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며 “다수 반복적으로 신고가 들어온 업체에 대해서는 신고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당 기업 시스템 전반을 들여다 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공정경제 분야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현 정부의 성패를 가장 좌우하는 것은 경제 문제”라며 “향후 1년 동안 국민 한분 한분이 체감할 수 있도록 성과를 내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초부터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7월 말까지 의견 수렴을 완료한 뒤 공론화를 진행해 정부 안을 정기국회에 상정할 계획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년간 최대 성과가 나온 분야로 ‘갑을관계 개선’을 꼽기도 했다. 그는 “가맹·유통·하도급·대리점 분야별로 순차적으로 대책을 만들어 차질 없이 추진해왔다”며 “제도개선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성과로 내세운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관행에 대해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했다”며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등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다만 공정위 본연의 역할인 시장경제 활성화가 다소 위축됐다는 점은 아쉽게 평가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