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공식화한지 1년이 된 지난 15일, 고리원전 1호기의 두뇌격인 주제어실에 들어서자 멈춰 선 채 미동도 하지 않는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캄캄했던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을 밝혔던 첫 원전 고리 1호기는, 그렇게 또 사상 첫 폐로(閉爐)라는 새 발걸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리 1호기는 대한민국 원전사(史)의 전부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21번째 원전보유국에 이름을 올렸다. 착공 8년 만에 완성된 고리 1호기는 당시 우리나라 전력설비의 9.2%(659만㎾)에 달하는 거대 발전소였다. 들어간 예산만 1,568억원.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 예산(430억원)의 네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전 세계, 특히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오일쇼크에 그나마 구명이 빛이 된 게 바로 고리1호기였다.
첫 원전이었던 만큼 사고도 많았다. 상업운전 시작 이듬해 제어기기와 급수펌프 고장으로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원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운 주역은 역설적이게도 고리1호기였던 셈이다. 2007년 수명 완료 이후 2008년 연장가동 결정까지 진통이 컸던 것도 이 때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정비를 위해 발전을 멈췄던 2012년엔 완전 전력 상실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문 대통령이 탈(脫)원전을 공식화하는 배경이 된다.
고리 1호기가 역사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데는 15년이 더 걸린다. 해체 승인, 사용 후 핵연료 반출, 잔존 방사능 완전 제거, 해체 완료라는 절차가 남아 있어서다. 그렇다고 원전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효암천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한국형 원전(APR-1400)의 최신 모델인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거세게 일었던 탈원전 논란에 5개월간 공사가 멈췄지만 공론화위원회로 논란이 종식되면서 지금은 종합 공정률이 34% 를 넘어섰다. 안전기준도 대폭 강화돼 외벽 두께를 넓히고 수소제거설비와 대체발전기 2기를 추가하기로 결정됐다. 박성훈 신고리 5·6호기 건설소장은 “대형 민항기가 와서 부딪혀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고, 사업비도 8조6,254억원에서 10조원 가량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부산 기장·울산 서생=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