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
짧은 ‘작가의 말’이었지만 큰 울림을 주는 두 문장이었다.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집필하는 과정이 김금희(사진) 작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김 작가는 할 말이 너무 차올라서 가장 간절한 말 두 개를 쓰는 것으로 벅참을 독자들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첫 장편소설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온 김 작가를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페 창비에서 만났다. 그는 “장편소설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완성돼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잘 펼쳐내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경애의 마음’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평범한 두 주인공 경애와 상수가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작가는 ‘평범함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일상을 받치고 있는 힘이 바로 보통의 마음들이라는 것이다.
“현실이 망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건 보통의 사람들이 각자 가진 강력한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광장에서 촛불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는데, 각자 흩어져 일상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가 이렇게 모여드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꼈죠”
전작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연애를 중점적으로 드러냈다면 신작에서는 두 주인공 상수와 경애의 연애는 마지막에서야 가능성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오히려 둘의 연대를 가둔다고 생각했다”며 “상처를 공유한 사람으로서의 연대, 자신을 찾는 노동자로서의 연대 등이 이성애 못지않은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독자마다 이 둘의 관계에서 어느 축을 관심 있게 보는지도 다를 수 있다. 그는 이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인물이 나를 이겼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지지고 볶는 두 사람의 연애사를 생각했는데 구상과 달리 캐릭터가 결말을 만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갔다는 뜻이다.
상수와 경애는 반도미싱의 영업부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는데 미싱사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 작가는 “미싱은 영어인 ‘머신’의 일본어 표기로, 결국 기계 문명을 대표한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미싱이 사양산업이 됐고 입지가 좁아졌는데 그 달라진 모습이 중요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젊은 영업사원들이 미싱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소설에서 상수를 표현하기도 했던 말인 ‘마지막 순정주의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출판사에 취직해 6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하루하루 속에 출근버스를 타려다가 크게 넘어진 경험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회사에서 책을 기획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한 번 넘어져서 이것을 그만하고 글을 써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회사를 그만둘 때는 스스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듯 떠났지만 퇴사한 이듬해 등단한 그는 문단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전작 ‘너무 한낮의 연애’는 올해 드라마화를 앞두고 있다. 드라마화에 대해 김 작가는 “대본 리딩을 할 때 내가 쓴 대사를 배우들이 감정을 넣어 읽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새로웠다”면서 “작품이 내 밖에서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김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김금희다운 소설’은 무엇인지 묻자 “이미 있는 마음과 있는 사람들을 의미 있게 기록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기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서 오는 새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을 의미 있게 바라본다. “82년생 김지영을 호명해서 그 나이 평균의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는 방식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지 문학이 화두를 던진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