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방향이 불투명해지면서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한 대출을 대폭 줄이고 단기금융상품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 환율 변동, 무역분쟁 등 글로벌 증시를 압박하는 이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쉽사리 관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적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시선은 시장이 출렁여도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는 단기 전략에 집중되고 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최근 5거래일(20일 기준) 연속 감소했다. 지난 12일 12조6,480억원에서 12조2,725억원까지 줄었다. 여전히 사상 최고 수준이지만 신용융자 잔액이 5일 연속 줄어든 것은 지난 2월 초 미국 국채 금리 급등에 따른 증시 조정기 이후 처음이다. 주식 투자를 위해 빌린 대출금인 신용융자는 주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더 늘리기 위해 활용한다. 신용융자 잔액 감소는 투자 심리가 위축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최근 환율 변동과 무역분쟁으로 인해 증시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북 경제협력 테마주에 대한 열기까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투자자들이 주식 비중 확대를 꺼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 대기 자금의 성격이 강한 머니마켓펀드(MMF)도 지난해 연중 최고치(138조38억원)보다는 적지만 122조원대가 유지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5월 이후 7%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22일에는 전일보다 0.83% 오르며 2,357선까지 회복했지만 장중 한때 연중 최저점(2,320.76)을 기록하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도 행진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최근 10거래일 동안 1조5,776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상장사의 실적 전망도 점점 하향 조정되면서 실적 장세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초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221조3,760억원이었지만 현재 215조2,139억원으로 2.8%가량 하향 조정됐다. 당장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도 기대치가 점점 낮춰지는 추세다. 증권사들이 추정한 2·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월 15조7,685억원에서 최근에는 15조3,738억원까지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경고음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증시 상승 잠재력은 제한적인 반면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문제들이 당분간 잠잠해질 수는 있겠지만 연말까지 변수로 작용하면서 시장의 변동성을 자극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시장이 출렁여도 대응이 가능한 단기 전략에 쏠리고 있다. 대신증권은 2·4분기 이익 전망이 양호한 정보기술(IT) 업종 중에서도 하드웨어·가전과 화장품·의류, 호텔·레저, 건설, 증권 등을 단기 매매할 만한 업종으로 꼽았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 투자가들도 이달 들어 삼성전기(009150)(순매수 금액 2,444억원), 아모레퍼시픽(1,193억원), 신세계(004170)(1,101억원) 등을 주로 사들이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증시 상승을 기대할 만한 요인이 없어 다음 주에도 증시가 좁은 박스권 안에서 움직일 것”이라며 “2·4분기 실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낙폭 과대주, 실적주를 중심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실적 추정치가 증가한 업종은 금융·에너지·미디어·필수소비재·유통 등이다.
시야가 불투명할수록 장기적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장기 거시경제적 변화와 정책적 변화를 감안해 관련 종목을 선점하라”며 글로벌 IT 생태계에서도 안전지대인 국내 반도체주, 경기민감 업종인 정유·화학주, 금리 상승의 수혜가 기대되는 증권주 등을 지목했다. 김 연구원은 “증시가 조정을 거치고 있지만 골디락스 경기에 대한 신뢰, 협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무역분쟁, 여타 선진국 대비 절대적으로 건전한 한국의 펀더멘털 등을 감안하면 증시 쇼크가 찾아올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