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보수, 썩지 않으려면 새 물 들어와야...치욕 되풀이하면 안돼"

■JP가 한국 정치에 남긴 유산

'수평적 정권교체' 일궈냈지만

'영호남 구도 고착' 책임론도

충청대망론으로 권력편중 견제

평생 숙원 내각제 꿈은 못 이뤄

1989년 당시 김대중(가운데) 평민당, 김영삼(왼쪽) 민주당, 김종필(오른쪽)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해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 문제를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1989년 당시 김대중(가운데) 평민당, 김영삼(왼쪽) 민주당, 김종필(오른쪽)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해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 문제를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55년간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군부 장기독재 시대를 도모한 핵심 참모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문민정치 시대에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수평적 정권교체의 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만든 JP는 6·13지방선거에서 몰락한 보수 야권에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JP는 보수의 몰락을 예견한 듯 “보수가 늘 보수 그대로 있으면 고인 연못처럼 썩어버린다”며 “연못이 썩지 않으려면 늘 새 물이 들어오고 오래된 물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고 보수 세력의 ‘변화’를 강조했다.


JP의 가장 큰 정치적 유산은 뭐니뭐니해도 수평적 정권교체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였던 JP는 대선후보로 나선다. 당시 이미 73세의 고령이고 자민련도 원내 1~2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여 그가 대권 구도를 흔드는 변수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제1야당이던 새천년민주당도 전년의 총선에서 79개 의석 확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뒤여서 1997년 대선에서 여권의 수성 가능성이 유력시되던 시기였다. 당시 김대중(DJ)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는 절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JP 측에 연합을 제안한다. JP는 이념도, 지역 기반도 다른 DJ와의 연합을 전격 승낙한다. 대선 승리 시 독일식 내각제 개헌을 목표로 하고 ‘대통령=DJ, 총리=JP’를 조건으로 하는 DJP연합의 탄생이었고 결과적으로 양당 연합정부 탄생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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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가 불을 지핀 충청 대망론은 영호남 대결구도의 지역 패권적 정치구도에서 소외지역민들도 단결하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비록 자민련은 해체됐고 현재 중부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변변치 않으나 불씨를 남겨놓았다. 지난 대선에서 반기문 전 유엔 총장 등이 대권 구도에서 명멸했고 차기 대선의 주요 잠룡 주자군으로 이완구 전 총리가 거론되는 점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JP가 DJP연합정부 시절 인사 등에서 막강한 실권을 쥐며 사실상의 책임총리 역할을 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책임총리제가 시도되는 데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JP가 현역의원 시절에 시도하려던 의원내각제는 정치적 기반의 한계와 국민들의 정서적 거부감으로 제대로 실험조차 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개헌 논의로 이어지고 있으나 정부가 제안한 개헌안의 국회 처리는 불발됐다. 재차 개헌이 추진될 수는 있으나 여야청 3자 간 동상이몽 상태여서 내각제 도입은커녕 대통령제를 다소 손질하는 것조차 예상하기 어렵게 됐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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