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세계 중앙은행들의 협력체인 국제결제은행(BIS)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세계 경기의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교역 동맹국들과 ‘설전’의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BIS 사무총장은 보호무역 조치가 세계 경제 취약요인 가운데 하나로, 성장을 저해하며 금융시장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후퇴나 침체를 일으킬 수 있는 ‘방아쇠’로 보호주의 조치 확대로 꼽고 “이것이 열린 다자간 교역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면 여파는 매우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교역 상대국을 향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난을 쏟으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높은 관세를 물렸다. 이에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보복 관세로 맞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2,000억 달러(223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여하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이런 보호무역 조치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언사’가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이미 투자가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월가에서도 미국발 무역전쟁이 전면화하면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피터 후퍼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이미 취한 조치만으로도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0.1%포인트 가량 하락을 불러올 것으로 추산했다. 또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 부과,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 20% 관세 부과 등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당초 예상했던 3%보다 0.3∼0.4%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후퍼 이코노미스트는 “고조된 긴장이 소비자, 비즈니스, 투자자의 신뢰까지 영향을 준다면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이런 전망에 동의하면서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애초 예상보다 0.3%포인트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역 갈등에 따른 악영향이 감세 효과까지 상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리먼 베라베쉬 IH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길로 계속 간다면 감세에 의한 긍정적인 효과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BIS는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도전과제에 대한 연례 보고서에서 중앙은행들의 통화완화 정책은 세계 경제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제는 안정을 위협한다고 평가했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의 정상화가 중앙은행들의 정책 여력을 다시 확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3월에 이어 이달 13일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추가 인상도 예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연말까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BIS는 각국 정부가 공공 재정을 통제하고 과잉지출을 막아 금융부문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경기 회복에 일조할 것을 요구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