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은행 몸집만 커졌지 내부통제는 '구멍가게'

[파이낸셜포커스]'대출금리 조작'으로 드러난 은행 내부통제 민낯

지점장 확인후 감사팀 점검하지만

대출 심사시스템 사실상 작동 안해

CEO 의지 약하고 안일해 개선 더뎌

가계대출 프로세스 및 내부통제 미비 사례가계대출 프로세스 및 내부통제 미비 사례



은행의 대출금리 부당 책정 의혹을 계기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안일하게 대응해오다 화를 자초했다는 자성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은행의 총 자산은 2007년 1,400조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2,363조원으로 확대될 정도로 몸집이 공룡처럼 커졌는데 선제적 점검이 안돼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할 은행이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27일 금감원이 은행 가산금리 체계 검사에서 드러난 대출금리 부당책정 행태는 과연 숫자를 만지는 은행인가 싶을 정도로 일선 창구의 어이없는 실수들이 대거 적발됐다. 경남은행의 경우 대출자의 연 소득을 입력하지 않거나 적게 입력해 부채비율이 높게 산출되고 이 때문에 가산금리가 0.25∼0.50%포인트 높아졌다. 대출 신청 때 받은 원천징수영수증에 나타난 소득 금액을 입력하지 않거나 직원 임의로 입력했고 은행 심사역은 이를 그대로 승인해준 것이다. 전체 165개 점포 중 100곳 안팎에서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 1만2,000건의 가계 대출금리가 과다 산정됐다. 일부에서 조작실수가 아니라 조직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경남은행은 전산등록 과정에서 대출자의 연 소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먹힐 리가 없다. 황윤철 경남은행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소득금액 입력 과정에서 잘못했고 내부 점검이 부족한 게 있었다”며 “내부통제 부분도 미흡한 게 있나 한번 더 점검해 고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신뢰 추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일부 은행에서만 이 같은 대출금리 부당책정 사례가 발견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 통제가 허술한 일부 은행의 일탈로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은행은 가계대출 전결권을 지점장이 갖고 있지만 본부에서 전담 감사와 여신감리부를 중심으로 자정 감사를 통해 적절성 여부를 가려내도록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본부 여신감리 기능이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고, KB국민은행은 대출실행센터가 별도로 있어 직원이 입력한 소득 등을 확인한 뒤에 대출이 나가도록 이중삼중 장치로 내부 통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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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KEB하나은행의 경우 전산상 산출되는 ‘시스템 금리’에 비계량적 요소를 가감해 대출금리를 정했는데 점포 직원이나 지점장이 임의로 최고금리를 입력했다. 한국씨티은행은 담보가 있는데도 없는 것으로 입력돼 대출금리가 높게 매겨졌거나 담보가 없는데도 있는 것으로 입력돼 낮게 책정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내부 통제는 최고경영자(CEO)가 얼마나 의지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전·현직 은행장들은 감독당국의 점검에 앞서 선제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내부 검사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이 같은 문제가 밖으로 표출됐다고 진단했다. 한 전직은행장은 “제대로 진행됐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작업이 허술할 때 시스템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면서 “검사실이나 상임감사·감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식이면 계속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은행이 금감원의 검사에 타성이 젖어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금감원으로부터 지적받은 것 외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기다 보니 이 같은 기초적인 실수가 나왔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산금리 체계 검사는 이번에 처음 나가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오류가 있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들여다보지 않고, 지적하지 않은 것은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복지부동의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다.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자정이 되는 게 아니라 늘 감독 당국이 검사를 나가 지적하고 사회적 이슈가 돼야 뭔가 액션을 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금감원은 금감원대로 악역을 맡게 되고 은행은 은행대로 신뢰를 갉아먹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감독 당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그에 앞서 은행이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해에는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오류로 47만명이 이자 16억원을 더 내도록 하는 등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고들이 연이어 터진 바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내부통제의 중요성은 더 커지는데 아직도 이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는 CEO들의 현실 인식 부족도 사태를 키웠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황정원·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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