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술탈취 없어야 벤처강국 된다] 기술자료 '임치제'로 탈취 막고, 징벌적 손배제로 처벌 강화

< 5·끝 > 정부 기술탈취 근절 대책은

홍종학 장관 '1호정책' 임치제도 중심 지재권 활성화

특허청 조사 강화하고 손배액도 3배서 10배로 증액

2915A17 기술임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나누고 있다./서울경제DB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나누고 있다./서울경제DB


지난해 11월 23일 홍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핵심 키워드는 ‘기술자료 임치제도’였다. 당시 그는 “가장 역점을 둘 사안은 기술탈취 문제 해결로 기술임치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도입됐지만 사실상 ‘잊힌 정책’였던 기술자료 임치제도가 다시 양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정부의 기술탈취 근절대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한편으론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보완해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기술탈취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기술자료 임치제도로 기술탈취 방지=기술자료 임치제도는 중소기업이 제3의 기관인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핵심기술과 영업 비밀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은 사전에 기술탈취를 방지할 수 있고 기술유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개발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보관된 기술은 법원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어 대기업과 기술탈취 관련 소송을 치러야 하는 중소기업에 유용하다. 미국과 영국에선 이 제도를 1930년대부터 도입해 효과적인 기술보호 수단으로 쓰고 있다.

또한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임치기술 활용지원사업’을 통해 임치기술을 담보로 융자를 받을 수 있으며 보관한 기술을 다른 기업과 거래할 수도 있다. 수동적으로 기술탈취를 보호하는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금융통이나 기술이전을 위한 정책 플랫폼으로도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임치기술을 이용한 대출금리를 최대 1%까지 감면하고 기술이전 중개수수료도 줄이며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기술자료 임치제도가 아직 제대로 정착하진 않은 상태다. 대기업과 거래할 때 기술을 임치한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기술임치 계약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최근 3년 사이엔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임치계약 건수는 2013년 5,685건을 보이다 2015년엔 8,562건으로 증가했지만, 2016~2017년엔 9,000건대에 머무르고 있다. 5월말 기준으로 2018년 체결된 임치계약은 총 2,572건이다. 이에 대응해 중기부는 지난 2월 기술임치가 의무화된 표준하도급계약서를 기존 13개 업종에서 21개 업종으로 확대하며 기술임치를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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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액 10배로 증액=기술탈취에 대한 응징수단도 보강하고 있다. 하도급법, 상생협력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산업기술보호법 등 지식재산권 관련 5개 법률에 손해배상액을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부과하도록 하는 조항을 명기하도록 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피해자에게 입힌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토록 한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하도급법 등에서 피해액의 3배까지 손해배상액으로 매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액 상한을 높이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특허침해에 대해 ‘솜방망이’ 징벌로 끝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손해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으로 49억원에 달하는 미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아이디어 탈취를 처벌할 근거조항도 마련했다. 아이디어는 주로 특허로 보호하기 전에 탈취돼 기존 특허법으로는 보호하기 어려웠다. 이를 막기 위한 부정경쟁방지법(부경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업제안, 거래상담, 입찰, 공모전 등의 거래관계에서 받은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부정경쟁행위 유형에 포함돼 오는 7월부터 특허청이 직접 조사에 나서 시정·권고조치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아울러 4월 발의된 부경법 개정안을 통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서도 특허청이 직접 조사하고 시정·권고할 수 있는 방안도 준비중이다.

◇기술보호, 혁신성장 지렛대로=전문가들은 정부의 기술탈취 근절 의지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중소기업의 혁신 동기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자료 임치제도는 보관된 기술을 활용한 연구개발(R&D) 사업과 기술사업화, 기술이전, 기술취득, 기술대여까지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방혁신에 기여할 수 있다”며 “당장 기업 입장에선 기술을 보관하는 데 소극적일 수 있지만, 임치제도를 통해 기술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풀만 마련된다면 기술보호뿐 아니라 기술활용과 기술확산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기술의 ‘제값’을 매기기 위한 지렛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자꾸 다른 기업의 지식재산을 뺏는 사례가 늘어나면 업체 사이에서 ‘우리도 제값을 주고 기술을 사야 하나’라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고 제 값을 내고 기술을 사도록 하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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