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한진重 수비크조선소 매각 위기] 숙련공·일감부족이 禍…'中 대응카드' 해외기지도 결국 실패

수십년 쌓아온 국내조선소 노하우

동남아 조선소가 따라잡기 역부족

업황 불황으로 일감도 뚝 떨어져

대우조선해양 망갈리아 조선소

STX 中 다롄조선소 잇달아 '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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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097230)이 글로벌 조선소 도약의 꿈을 가지고 야심 차게 추진한 수비크조선소가 매각을 검토해야 할 만큼 위기에 처한 것은 해외 진출 전략이 여러모로 부실했기 때문이다. 일단 현지의 저렴한 인건비에 너무 의존했다. 즉 낮은 인건비에 현혹된 나머지 현지에서 국내 조선사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숙련된 기술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과 울산·거제 등 조선업이 발달한 한국 도시에 비해 관련 산업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업황 불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 이 기간에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기업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만 봐도 지금까지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에 신조 조선소를 설립한 것은 한진중공업의 수비크조선소를 포함해 대우조선해양(042660)의 루마니아 만갈리아조선소, STX조선해양의 중국 다롄조선소, 현대미포조선의 베트남 현대 비나신조선소 등 네 차례다. 이중 현대 비나신조선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매각을 추진하거나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수비크조선소가 대규모 자금유치와 매각을 동시에 타진하고 있고 만갈리아조선소도 조만간 네덜란드 다멘그룹에 매각될 예정이다. 만갈리아조선소의 주주들은 22일(현지시간) 주주총회를 통해 다멘이 만갈리아 지분 49%를 갖고 루마니아 정부가 51%를 보유하는 대신 경영권은 다멘에 넘기는 안을 통과시켰다. 다롄조선소도 그간 수차례 매각을 추진했으나 무산돼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

이처럼 국내 조선사들의 해외 진출이 번번이 좌절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일감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외 조선소의 자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진중공업만 해도 올 5월 현대상선이 발주한 역대 최대 3조원 규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입찰에 참여했지만 참가 업체 중 유일하게 수주에 실패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수비크조선소에서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하려 했으나 현대상선 측은 “평가 기준에 미달했다”고 탈락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소들이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와 기술을 동남아시아 조선소들이 하루아침에 따라잡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동남아 진출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저임금 노동자를 쓰는 것 자체는 좋은데 동남아시아에는 용접이나 커팅 노하우가 있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태부족”이라며 “중국이 국가적으로 조선업에 집중 투자를 했지만 한국의 기술력을 따라오는 데 10년 이상 걸렸는데 필리핀과 같이 정부의 투자가 없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형 조선사 관계자도 “필리핀은 덥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조선업을 할 만한 기후라고 볼 수 없다”며 “인건비가 싼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성이 낮아 메리트가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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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부실한 조선업 생태계도 문제를 키웠다. 그간 조선업 구조조정에 참여해온 한 대형 회계법인 소속의 회계사는 “조선업이나 자동차·반도체와 같은 종합 제조업은 관련 밸류체인이 연계될 수 있도록 클러스터가 구축돼야 한다”며 “국내 조선사들이 노조 문제와 인건비 등을 피해 해외로 눈길을 돌렸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현지에 관련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루마니아 현지의 싼 인건비를 보고 투자했으나 이후 루마니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후 인력이 유출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현지 조선소가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던 국내 조선사들의 해외 진출마저 좌절되면서 국내 조선사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했던 조선업은 중국에 밀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전 세계 선박 수주 시장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앞지른 지 오래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국가별 수주잔량은 중국이 2,857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1위를 기록했으며 한국은 1,688만CGT로 2위에 그쳤다. 그나마 아직은 한국 조선사들이 중국 조선사들에 기술력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같은 고부가가치선 수주에서는 앞서고 있지만 중국이 정부 주도로 조선업 기술을 육성하고 있어 기술 격차도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최근 중국 1·2위 조선사가 합병을 추진하는 등 중국 업체들의 도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고병기·김우보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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