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피싱] 고기잡이, 문명을 낚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농경·목축이 정착생활 가져왔듯

고기잡이, 인류의 이동생활 자극

배 기술 발달…탐험·무역 기반 돼

염장 물고기로 식량 장기보존도




고대 문명은 ‘이’들이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집트 기자(Giza)의 피라미드와 캄보디아의 웅장한 앙코르와트 사원도 마찬가지다. 바로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다.

초기 인류문명은 대부분 강어귀, 호수, 연안 아니면 대양에 접근하기 쉬운 자리에서 꽃피웠다. 작은 무리에서 마을, 도시, 제국, 국가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중요한데 강어귀나 호수 등은 어부들이 식량원을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 외곽에서 바닷사람들이 물고기를 대주지 않았다면 문명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작 ‘피싱’은 세계적인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로 손꼽히는 브라이언 페이건이 바다와 고기잡이로 인류사를 살펴본 책이다. 원제가 ‘고기잡이-바다가 인류 문명을 어떻게 먹여살렸나’인 것처럼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친 바다와 고기잡이 이야기를 담았다. 80대의 노(老)학자는 평생에 걸쳐 세계의 주요 유적을 둘러보고 고고학, 인류학, 역사, 해양생물학, 고기후학 등 여러 분야에서 고기잡이 역사와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집대성했다. 자신이 직접 항해할 만큼 바다를 좋아해 ‘어부와 배들 근처를 평생 맴돌았다’는 저자는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평생에 걸쳐 이 책을 작업해 왔다”고 말한다.

관련기사



이라크 서쪽에서 창으로 고기를 잡는 습지대의 아랍인. 윌프레드 세시저(1910~2003)가 촬영했다. /사진제공=을유문화사이라크 서쪽에서 창으로 고기를 잡는 습지대의 아랍인. 윌프레드 세시저(1910~2003)가 촬영했다. /사진제공=을유문화사


곡물을 재배하기 전까지 인류는 사냥, 채집, 고기잡이의 방식으로 식량을 획득했다. 이 중 사냥과 채집은 인류가 발전하면서 목축과 농경에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고기잡이만은 200만 년 넘게 식량 획득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야생에서 최후에 기댈 만큼 중요한 식량원은 역사적 관점으로 다가가 볼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고기잡이를 이끈 어부와 어부 사회는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쌓은 견문을 가슴에만 묻어 두고 무명의 존재로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어부들이 현대 세계가 세워지는데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보여 주고 싶어서”다.

이 책은 생존 활동으로서의 고기잡이 역사를 통해 고기잡이가 농경이나 목축 못지 않게 인류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농경과 목축이 인간에게 정착 생활을 부추겼다면 고기잡이는 탐험, 교역, 항해 등 인간의 이동 생활을 자극했다. 물가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나 조개 등 바다 식량원이 고갈되거나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로부터 식량처가 훼손되면 풍요로운 어장을 찾아 계속 이동했다. 또 고기잡이에 수반된 기술, 그중에서도 배와 관련된 기술은 새로운 대륙을 탐험하고 대양을 건너 더 먼 곳에서까지 무역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물고기는 건조하거나 염장 처리하면 가벼우면서도 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이 됐는데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어 교역자, 탐험가, 정복자 등에게 이상적인 식량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다는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 인류가 10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물고기를 마구 잡기만 하면서 오늘날 어장량은 급감하고 있다. 싹쓸이에 가까운 남획과 태평양의 엘니뇨 같은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이전까지 아주 풍요로웠던 바다를 영영 사막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속 가능한 어업은 월턴(‘조어대전’으로 유명한 영국 수필가)의 조용한 낚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편이 낫다. 안 그러면 바다에서 더 이상 물고기를 구경하지 못할 테니까” 1만8,900원

가마우지와 함께 있는 중국의 어부들. 윌리엄 알렉산더(1767~1816)의 수채화 /사진제공=을유문화사가마우지와 함께 있는 중국의 어부들. 윌리엄 알렉산더(1767~1816)의 수채화 /사진제공=을유문화사


김현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