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이 첫 관문을 넘었다. 기본설계를 마친 것이다. 앞으로 약 14개월 동안의 상세 설계 절차가 남았으나 전체적인 윤곽은 사실상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 방위사업청이 29일 발표한 대로 KF-X 사업의 기본 뼈대가 완성된 것이다. 한국형전투기사업단이 공개한 최종 형상을 보면 뚜렷한 특징이 나온다. 일각에서 내심 기대했던 스텔스기는 아니지만 F-16 전투기를 크게 능가하는 성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흘러 기술개발의 진전이 있을 경우 스텔스기로 진화할 여지는 남겨 놓았다.
◇F-22 랩터 닮았지만…=방사청이 제시한 최종 형상의 분류 번호는 C 109. 가능성을 검토하던 2004년부터 제안된 C 101, C 201(삼각형 주익과 커나드 부착형), C 102, C 103을 거쳐 군의 요구사항이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C 104와 풍동실험까지 마친 C 105, C 106, C 107, C 108 등 지금까지 제안된 모든 디자인의 장점을 모은 게 바로 C 109다. 실험에 실험을 반복하면서 KF-X의 형상도 크게 변해가며 두 가지 특징이 생겼다. 첫째는 크기. 동체 길이가 처음 구상할 때보다 최소한 1m 늘어났다. 엔진 역시 단발에서 쌍발로 되돌아왔다. 두 번째는 디자인. 갈수록 미국제 전투기들을 닮아가고 있다. 미 공군이 애지중지하며 운용하는 F-22 랩터 전투기와 외양이 비슷해져 ‘베이비 랩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나 성능은 그렇지 않다. 공군의 요구 수준이 높아 처음 계획보다는 강한 전투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지만 랩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 5세대 스텔스기 아니라 4.5세대 전투기=일각에서는 클린(비무장) 상태에서 F-35 이상의 스텔스 성능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엇보다 최종 형상에서 돌출된 부분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종석 앞의 능동형피아식별장치(AIFF). KF-16의 조종석 앞에 설치된 피아식별장치(IFF)과 외양이 비슷하다. 피아식별장치 바로 뒤에도 적외선 탐지 및 추적 장치(IRST)가 튀어나와 있다. IRST는 적의 항공기나 미사일 등이 뿜어내는 적외선을 감지해 탐지하는 ‘적외선 탐색 추적장비’. 상대방이 아군기의 IRST의 사용 여부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특징이다. 공대공 전투에서 적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려 할 때 적외선 신호를 탐지함으로써 생존성을 크게 높여준다.
수직 꼬리 날개에 달린 교란 안테나도 돌출형이다. 더욱이 전자전 포드는 동체 바로 밑에 외장형으로 달렸다. 무장도 모두 외부 장착형이다. 기체가 대형화하면서 당초 제시된 무장보다 늘어났으나 공대공 미사일 4기가 반(半) 매립식일 뿐 나머지 무장은 외부 파일런에 달렸다. 뾰족하거나 돌출된 부분이 많으면 적의 탐지 레이더에 걸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F-22나 F-35 등 5세대 스텔스 전투기들은 이 같은 장비들을 모두 동체와 일체화하고 무장도 내부에 실어 피탐면적을 줄였다.
개발팀 관계자는 “내부 무장창을 만들 공간을 확보하고 모든 항전장비를 컨포멀 형식으로 바꿀 공간이 있다”면서도 “이제 처음 본격적인 전투기를 제작하는 마당에 각각의 기술을 개발하고 통합하기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KF-X가 스텔스 기능을 갖추려면 블록 2, 또는 블록 3을 생산하는 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언제 블록 2와 블록 3으로 건너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술 수준도 문제지만 아직까지 중장기 소요 제기는 물론 예산도 전혀 거론되지 않는 실정이다.
◇AESA 레이더 등 성능은 기대 이상=의구심 가운데 출발했던 능동형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을 비롯한 각종 장비 개발은 순항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ESA 레이더는 해외기술을 통째로 사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스웨덴 등의 기술 협조를 받아 국내 기술진이 개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공대공·공대지·공대해 등 종합적인 성능 테스트를 병행하고 있다. AESA 레이더의 성능을 결정한다는 모듈의 수도 해외 최신 레이더와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개발팀 관계자는 “블록 1에 들어갈 모듈 수는 1,024개”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 공군이 운용 중인 F-16 전투기가 F-16 V 형식으로 개조되며 탑재할 최신 AESA 레이더와 비슷한 수준이다.
최신 레이더와 항법장치, 늘어난 이륙 중량 등을 감안하면 KF-X는 처음 구상했던 ‘F-16의 성능을 약간 웃도는 정도’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한때 T-50 고등훈련기를 모체로 삼아 단발기를 개발한다는 구상이 공론화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수요군인 공군의 요구가 그만큼 많고 높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수많은 고비가 남았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 건이 제대로 풀리더라도 통상 신형기를 개발할 때 주로 문제가 드러나는 게 설계 시기가 아니라 생산과 시험비행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 작은 개울 하나 넘은 셈이다.
■기본설계 종료 의미는
軍이 요구한 기본성능 반영됐는지 최종 확인
내년 9월 상세설계...2021년 첫 시제기 나와
기본설계검토(PDR)는 군이 요구하는 체계조건과 체계기능 조건을 기본설계에 반영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 방위사업청은 지난 26~28일 사흘간 KF-X 체계 개발을 위한 기본설계검토 회의를 열어 전투기 외형 등 군이 요구하는 기본성능이 모두 반영됐음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방사청은 2016년 1월 KF-X 개발사업에 착수해 그해 3월 체계요구조건검토(SRR)를, 12월에는 체계기능검토(SFR)를 각각 마쳤다. 이번 PDR 회의에서는 공군과 민간 전문가 및 인도네시아 관계자로 구성된 검토위원회를 통해 공군의 요구사항이 KF-X 계통규격서 등 230여종의 기술자료에 적절히 반영됐는지를 최종 확인했다.
기본설계 절차를 완료함에 따라 KF-X 사업은 전투기를 제작할 수 있는 실제 설계도를 제작하는 ‘상세설계(CDR)’ 단계로 들어섰다. 정광선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철저한 사업관리를 통해 오는 2019년 9월까지 상세설계를 완료하고 이상 없이 시제기 제작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 10월부터는 KF-X 제작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시제 1호기 출고 목표는 2021년 상반기. 2022년 하반기에는 첫 비행시험을 거쳐 2026년까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