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이유 등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결이 나오면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가 처벌 규정은 합헌으로 두면서도 “처벌조항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해석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사실상 처벌 문제의 책임을 법원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입장과 정부의 달라진 남북 정책 등을 고려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올 하반기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본 기존 판례를 뒤엎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28일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 제5조 1항(병역종류조항) 등에 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판단이다. 헌재는 내년 12월31일까지 병역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병역종류조항에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형벌을 부과받으며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이번 판단으로 2020년부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입영 대신 다른 수단으로 병역부담을 질 수 있을 전망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올 5월31일까지 병역을 거부한 사람은 총 2,756명이며 이 가운데 99.4%인 2,739명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이들 중 1,790명은 법원에서 징역 등 실형을 확정받았다. 현 병영법은 병역 종류를 군사훈련을 전제로 하는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 다섯 가지로만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무엇보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헌재와 경쟁관계에 있는 대법원 전합 판단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 근거가 된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4(합헌)대4(일부위헌)대1(각하)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결정문 곳곳에 법원의 재판단을 촉구하는 언급을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낸 강일원·서기석 재판관조차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종류조항의 입법상 불비와 양심적 병역거부는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해석이 결합돼 발생한 문제”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 문제를 국회와 법원의 탓으로 돌렸다. 이들은 “처벌 문제는 입법부의 개선 입법과 법원의 후속 조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최근 남북관계와 안보상황이 급변한 점도 대법원 입장에서는 주요 고려 사항이다.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법원도 재판단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와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심리 중인 병역법·예비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 사건으로 돌렸다. 대법원은 7월4일 비교법 실무연구회에서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다룬 뒤 8월30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공개변론을 갖기로 했다. 선고는 공개 변론 시점에서 2~4개월 뒤 이뤄질 전망이다.
전원합의체가 이번에 심리하는 두 사건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각각 현역병 입영과 예비군 훈련 소집을 거부했다가 1·2심에서 유죄를 받은 사건이다. 쟁점은 헌재의 지적대로 병역법과 예비군법에 규정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종교나 양심이 포함되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2004년 전원합의체를 통해 양심 실현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국제연합 자유권규약위원회가 2006년부터 우리나라가 자유권규약 제18조를 위반했다는 견해를 수차례 공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럽인권재판소도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아르메니아 정부가 인권규약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최근 하급심이 관련 사건들을 여러 번 무죄로 선고하면서 대법원 판례와 충돌하고 있다. 여기에 헌재까지 선제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 차원의 교통정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법원 관계자는 “어쨋든 처벌조항은 합헌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현재 법원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한 법률적인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