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앞을 보면 성하(盛夏)의 세상은 빈틈없이 푸르다. 잎이 초록빛을 띠는 까닭은 우리의 직관과 달리 엽록체 안의 엽록소가 초록빛 가시광선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대신 엽록소는 청자색과 황적색 빛을 흡수해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물질이 나타내는 색은 표면에서 반사돼 튕겨 나오는 가시광선의 파장을 반영할 뿐이다.
여름인데도 적색을 띠는 단풍나무는 광합성에 필요한 한 영역의 빛을 기꺼이 포기했다. 온대 지방의 겨울에는 광합성이 활발하지 않겠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식물과 조류 및 세균은 매년 약 2,040억톤의 탄소를 고정한다.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붙들어 포도당과 같은 유기 탄소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식물을 먹고사는 지상의 온갖 생명체는 이 포도당을 깨서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로 연간 얼추 2,000억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되돌려보낸다. 그러므로 생명체들이 관여하는 알짜배기 광합성과 호흡량을 고려하면 약 40억톤의 탄소가 고스란히 남아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탄소를 태우면서 인간은 그 균형을 빠르게 뒤집어버렸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 양이 급격히 늘어나는 주된 까닭이다. 따라서 대기로 돌려보낼 탄소를 줄이거나 역으로 그것을 고정할 새로운 방식이 인류에게 절실해졌다.
지난달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지금껏 알려진 방식과 다르게 광합성을 하는 체계가 발견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의 빛인 근적외선을 에너지로 써서 광합성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현상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명체는 이미 예견됐다. 2013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은 옐로스톤 온천의 조류 띠 아래 어둑한 곳에서 광합성을 하는 렙톨린비아(Leptolyngbya)라는 13가지 계통의 남세균을 찾아 보고했다. 그 뒤로 여러 과학자는 뜨거운 호수뿐만 아니라 사막이나 토양 표면에서도 이런 세균을 연거푸 찾아냈다. 세균들은 엽록소의 형태를 약간 손본 다음 흡수하는 빛의 파장대를 가시광선 너머까지 확장해나갔다.
지구 표면 3분의1이 사막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발견은 인류에게 커다란 의미를 띤다. 근적외선을 이용해 탄소를 고정하고 산소를 낼 수 있는 이들 미생물을 사막에 이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또 굳이 태양 빛이 아니라도 간접적으로 근적외선을 낼 수 있는 건물이나 황토벽 안쪽에서 식물을 재배할 가능성도 타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적 변형을 통해 식물에 새로운 엽록소를 이식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주생물학자들은 화성을 지구화하고자 할 때 우선 이들 세균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런 발견은 인공 광합성을 꿈꾸는 과학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새로운 엽록소가 태양광에너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적외선 파장대의 활용 방안에 대한 식견을 제공하기에 그렇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진은 금나노 입자와 산화티타늄 전극을 이용해 근적외선에서 물을 깰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근적외선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남세균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광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을 사용한다. 양분이 풍부한 경작지에서 자라는 식물은 태양에서 도달하는 광자의 1% 정도만을 곡물로, 다시 말해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데 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최근 새로운 엽록소의 등장에 눈이 부릅떠지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구 바깥에 관심을 두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대기권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일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시급하다. 그렇기에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일 방도를 발명해 인류에게 벅찬 희망을 주는 세균에게도 변하지 않는 따스한 눈길을 보낼 일이다. 또 그들의 무쌍한 변화를 경탄의 눈으로 보는 일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