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보랏빛 소' 못 키우는 한국

성행경 바이오IT부 차장

ㅇ



지난해 3월 모터쇼를 취재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찾았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이용했는데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2만원 가까운 요금이 나왔다. 메신저로 후배에게 푸념했더니 대뜸 “우버를 이용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뒤 다음 날 저녁 공항과 가까운 곳에 있는 행사장에서 숙소까지 우버 택시로 이동했다. 요금이 절반에 불과했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버 앱을 지웠다. 한국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또 다른 승차공유 서비스 앱인 ‘그랩’을 내려받았다. 이달 말 여름휴가를 보낼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서 이용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2년 말레이시아 출신 사업가 앤서니 탄이 설립한 그랩은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우며 8개국 200여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기자처럼 해외에서 승차공유 서비스를 이용해본 이들이라면 국내에도 하루빨리 도입되기를 원할 것이다. 편리한데다 저렴하기까지 한 서비스를 마다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에서 승차공유 서비스는 몇 년째 공회전하고 있다.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법·제도와 이해당사자인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의 우버’로 불리던 국내 1위의 카풀 서비스 업체 ‘풀러스’가 투자금을 거의 다 까먹고 사업 모델 재점검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기자는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타트업 발전을 위한 규제개선 토론회’가 택시 업계의 반발로 무산되는 현장에 있었다. 승차공유 서비스의 도입·확산으로 피해를 입을 택시 업계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토론 자체를 무산시킨 행위는 볼썽사나웠다. 생각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화로 접점을 찾는 것이 맞다. 정부와 국회도 잘한 것이 없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 규제 완화만으로도 승차공유 서비스가 가능한데 정부는 택시 업계의 반발을 핑계 삼으면서 복지부동으로 일관했다. 신개념 사업 모델이 규제나 기존 산업과 충돌할 때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조정하고 타협점을 마련해야 하는 국회도 역할을 방기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세스 고딘은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저서에서 일반적인 누런 소들 사이에 시선을 확 잡아끄는 보랏빛 소가 있다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며 보랏빛 소가 되기 위해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주목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보랏빛 소’가 속속 등장해 치열한 경쟁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는데 우리는 누런 소들만 규제 울타리가 둘러쳐진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정부가 바뀌어도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늘어질 대로 늘어진 규제개혁 테이프를 또 틀어대야 하는 현실이 한심하다.
saint@sedaily.com

성행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