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저녁이 있는 삶'의 필요조건

정민정 성장기업부 차장




지난 2016년 5월28일, 스무 살도 안 된 청년 김군이 구의역에서 꽃 같은 목숨을 잃었다. 공구가방에 남겨진 미처 뜯지 못한 컵라면과 스테인리스 숟가락에는 청년의 힘겨웠던 일상과 노동 현장의 민낯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성장’이라는 바퀴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 그 고통은 먹이사슬 밑단에 자리한 중소기업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넘어오기 마련이다. 정치가 감당해야 할 사회 계층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달 시행에 들어간 근로시간 단축은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 노동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계층과 ‘삶이 있는 저녁’이 불가능한 계층이 극명하게 나뉜 현실에서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선결돼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초과근로 감소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은 월평균 37만7,000원(11.5%) 줄어든다.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감소 폭이 7.9% 수준이지만 30~299인 기업과 5~29인 기업은 감소율이 각각 12.3%, 12.6%로 대기업에 비해 2배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한 청원인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주 100시간도 일할 수 있다”면서 “서민의 삶은 생각지 않고 법을 시행하면 모자란 부분은 어떻게 채우느냐”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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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한 자영업자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줄어든 데 이어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 손님마저 잃게 됐다”며 “종업원은 8시간 일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사업주는 전 가족이 매달려 12시간씩 일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최장집 교수는 “삶의 조건이 정부 정책에 따라 언제라도 위협당할 수 있는 이들의 문제가 바로 민생”이라고 규정했다. 지금까지 보수든 진보든 민생 경제는 예산을 풀어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온정주의적 시혜, 딱 그만큼의 접근이었다. 최 교수는 “세상을 개혁하려 한다면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부터 고민하라”고 했다. 단 개혁의 주체가 유능하면서도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임혁백 교수는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언급하며 ‘핏 투 거번(fit to govern)’을 제시했다. 노동자 정당이니 노동자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적합한 정당임을 입증하라는 주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책의 선한 의지가 현장에서 원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제 정책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시점에 정부 스스로 물어보자. ‘우리는 유능했는가’ ‘우리는 구체적이었는가’ ‘우리는 (통치하는 데) 적합했는가’.

수백만 촛불이 빚어낸 광장의 기적이 ‘한겨울의 기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 스스로 수권(授權)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구체적이면서도 유능한, 대한민국을 통치하기에 적합한 수권 능력 말이다. 그것이 영하의 날씨에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켜낸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jminj@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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