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결혼은 그저 통과의례? 행복?..몸의 언어로 하나씩 풀어봤죠"

■ 현대무용 '토크 투 이고르-결혼, 그에게 말하다'

안무가 전미숙·차진엽 인터뷰

6년만에 ‘토크 투 이고르’를 재연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전미숙(오른쪽)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와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안무가로 성장한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이번 공연의 무용수로 출연하는 차진엽이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 캠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호재기자6년만에 ‘토크 투 이고르’를 재연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전미숙(오른쪽)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와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안무가로 성장한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이번 공연의 무용수로 출연하는 차진엽이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 캠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호재기자



희생, 끝나지 않을 숙제, 책임, 행복의 요소, 동반자. 결혼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수식과 정의의 재료들이다. 형태나 방식은 다를지언정 어느 사회든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고 반드시 성인이 되어야만 결혼이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도 아니니 이만한 남녀노소, 만국 공통의 주제가 어디 있을까.

현대무용 안무가 전미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21세기 결혼의 의미를 약 100년 전 결혼을 주제로 댄스 칸타타 ‘레스 노체스(Les Noces·결혼·1927)’를 쓴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묻기로 했다. 오는 14~1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토크 투 이고르-결혼, 그에게 말하다’를 통해서다. 스트라빈스키를 택한 것은 그가 시대를 앞서 삶과 예술을 통찰하고 의외성과 도발로 기존의 관념을 해체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거쳐야 할 사회적 통과의례로 여겨졌던 결혼의 의미를 해체하려 했던 전 교수의 생각이 음악과 맞닿은 결과다.


6년 전 초연한 이 작품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몸의 언어로 세상을 탐구하는 무용수에게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인 결혼이라는 주제는 반드시 이야기해볼만한 주제”여서다. 무엇보다 그 사이 초혼 연령은 더 올라갔고 비혼율도 높아졌다. 시간이 흐르며 차진엽, 최수진, 정태민, 김성훈 등 초연 무대에 섰던 무용수들은 한국 무용계를 든든히 받치는 대들보로 성장했고 전 교수가 아니라면 한 무대에 모으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감을 얻었다.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무용계가 들썩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함께

결혼한 ‘스승’·홀로선 ‘제자’

6년전 작품 다시 다듬어 공연

전 교수 “재창작 수준 탄탄”

차진엽 “결혼제도 성찰 계기”


8일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 캠퍼스에서 만난 전 교수는 “자기만의 확고한 색깔과 신념, 연륜을 지닌 중견급 무용수들과 작업하면서 작품의 주제의식은 더욱 명확해졌고 내용과 구조도 더욱 탄탄해졌다”며 “거의 재창작 수준으로 작품을 다듬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대단한 무용수들을 모셔놓고 무슨 고민을 하느냐’고 타박하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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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 김동규, 김보라, 김재덕, 김판선 등 국내 대표 무용수 겸 안무가들을 배출한 전 교수지만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무용감독부터 최근에는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무가 겸 무용수 차진엽을 바라보는 전 교수의 마음은 조금 더 애틋하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중견급 여성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스승과 제자가 걷는 길은 같은 듯 다르다. 우선 전 교수는 25년 전 결혼했지만 불혹의 차진엽은 일과 결혼했다. 전 교수는 “자식처럼 아끼는 제자이니 결혼을 해서 평범한 삶을 누리길 바라면서도 꿈과 재능을 펼치기 위해 지금처럼 일에 전력을 쏟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며 “제자들이 예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큰 보람이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차진엽은 “인생을 살면서 사랑의 감정을 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대상이 반드시 이성일 필요는 없다”며 “이번 작품은 선언적인 메시지가 담기지는 않지만 결혼과 꿈이 양립하기 어려운 한국식 결혼 제도의 특수성을 성찰해보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년만에 ‘토크 투 이고르’를 재연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전미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이호재기자6년만에 ‘토크 투 이고르’를 재연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전미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이호재기자


‘토크 투 이고르’에서 무용수로 활약하는 차진엽 /이호재기자‘토크 투 이고르’에서 무용수로 활약하는 차진엽 /이호재기자


전 교수와 차진엽의 결혼관 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무용수들 각자의 결혼 이야기도 무대 위에 펼쳐진다. 무용수들이 수십 개의 스탠딩 마이크를 부여잡고 각자의 생각을 말과 몸짓으로 동시에 전하는 버벌댄스 형식이 주를 이룬다. 대다수 무용수가 안무 경험이 있는 만큼 각자의 생각을 버무려 장면을 구성하고 원고도 직접 썼다. 이중 차진엽은 가장 일반적인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떠올릴법한 이미지를 대변한다. 차진엽은 “대다수 여성은 사랑의 결정체로서 결혼에 대한 환상과 의구심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책임과 헌신에 대한 부담감도 지니고 있다”며 “결혼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지만 통상적인 인식을 무대 위에 보여주며 생각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오랜만에 한 무대에서 만난 제자에게 스승은 여전히 바라는 것이 많다.

“한국에 차진엽의 춤을 따라갈 자는 없어요. 자신의 삶과 정신을 반영하지 않은 춤은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런데 차진엽의 춤에는 자기가 있어요. 차진엽이 무대를 오래도록 빛내야 할 이유죠.”(전미숙)

제자는 여자 무용수들을 위한 무대를 좀 더 만들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10년 전 한국에서 안무를 시작하면서 여자 무용수들이 평가 절하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여성 무용수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숨어 있는 무용수들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무대에 세웠죠. 굳이 무용수라는 단어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없게끔 제 역할을 하고 싶어요.”(차진엽)


‘토크 투 이고르’ 연습장면 /사진제공=전미숙무용단‘토크 투 이고르’ 연습장면 /사진제공=전미숙무용단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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