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올해 5월까지 410만CGT(87척)를 수주하며 일감확보 경쟁에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척수만 보면 중국(157척)에 뒤졌지만 선가 및 부가가치 등이 반영된 표준화물선 환산톤수(CGT) 기준으로는 한국 수주량이 중국(359만CGT)을 여유 있게 웃돈다. 한국 조선업이 여전히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품질 경쟁력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 실적만 놓고 웃을 수 없는 처지다.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에 발목을 잡힌데다 연구개발(R&D) 투자도 줄이고 있어서다. 강재 가격 상승 압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몸집 불리기’에 나선 중국 조선사가 본격적인 도약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점유율 높지만 고정비 높고 R&D 투자 적어=9일 글로벌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의 누적 수주량은 410만CGT(87척)에 달했다. 수주 점유율은 41%. 중국은 수주량 359만CGT(157척), 점유율 36%로 2위다. 일본의 점유율은 11%(113만CGT·36척)에 그쳤다.
기술력이 담보돼야 하는 선박 위주로 발주가 늘어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오는 2020년부터 시행되는 환경 규제를 앞두고 친환경 연료 사용이 강조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발주가 늘었다.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는데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대형유조선(VLCC)과 컨테이너선 발주도 늘었다. 상대적으로 선박 건조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이 일감을 따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문제점이 적지 않다. 기술 우위를 지킬 만한 역량이 부족해 언제까지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들면서 매출이 쪼그라들자 R&D 비중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 3사의 R&D비도 지난해 2,067억원으로 전년보다 42% 줄었다. 2013년 이후 4년 연속 줄었다. 업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조선사들이 수년 내 우리가 우위에 있는 LNG 운반선 관련 기술을 따라잡을 것으로 내다본다.
기술 격차는 좁혀지는데 경쟁국에 비해 높은 인건비는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 조선사 셈코프마린이 국내 조선사를 제치고 요한카스트버그 프로젝트의 일부를 따낸 일이 상징적이다. 셈코프마린의 입찰 가격은 국내 조선사보다 최대 20%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동남아 노동자를 영입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이 “중국·싱가포르는 우리의 3분의1밖에 안 되는 인건비로 공격해오고 있다”며 푸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백척간두에 서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당장 철강업체는 선박에 들어가는 주요 자재인 후판 단가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VLCC의 경우를 보면 전체 선박 건조 비용 중 철강 비중이 20% 수준이어서 철강 가격이 5% 오르면 전체 건조 원가는 약 1% 상승한다. 선박 건조시 척당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인 만큼 배를 지어도 본전도 못 찾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내 대형 조선사가 합병을 추진하며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는 것도 국내 업계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중국 1·2위 조선사인 CSIC와 CSSC가 합병을 마무리 지으면 매출 규모만도 총 5,080억위안(약 86조2,940억원)에 이르는 거대 조선소가 탄생한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사 3사의 매출 합계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합병을 통해 중복되는 설계 기능과 인력을 줄이고 일반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는 만큼 중국 업체들의 저가 수주 공세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가 상승세에 희망=국내 조선사가 희망을 거는 것은 조금씩 반등하고 있는 선가다. 5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27포인트로 지난해 3월 저점(121포인트)을 찍은 후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신조선가지수는 1988년 1월 기준 선박 건조 비용을 100으로 놓고 매달 가격을 비교해 매기는데 지수가 100보다 클수록 선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주 입장에서는 선박 가격이 상승할수록 지금 주문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만큼 발주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LNG 등 신규 선박 발주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선령이 15년 이상 돼 환경 규제를 맞추지 못하는 배를 가진 선주 입장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 장치를 부착하는 것보다 폐선하고 새 선박을 발주하는 게 경제적이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국의 추격을 고려하면 이전 호황기만큼의 수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속적인 다운사이징을 통해 작지만 단단한 조선소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보·고병기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