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사설탐정




163㎝의 단신에 녹색 눈, 왁스로 모양을 낸 ‘카이젤’ 수염이 자랑거리인 그는 사건 현장에 나타나 손으로 콧수염 모양을 다듬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이 정도로도 ‘탐정’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린다. “저는 에르퀼 푸아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명탐정이죠.” 푸아로는 영국 서섹스 교구의 가톨릭 사제인 브라운 신부, 런던 베이커가 221B에 사는 셜록 홈스와 함께 세계 3대 명탐정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푸아로 대신 일본의 호무라 소로쿠를 3대 명탐정으로 꼽기도 한다.

직업으로서의 사설탐정은 17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먼저 탐정업을 합법화한 곳은 미국이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앨런 핑커턴이 그해 설립한 사설탐정 회사 ‘핑커턴’은 여전히 전 세계 30곳에 사무소를 두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설탐정을 의미하는 ‘프라이빗아이(private eye)’라는 용어는 바로 이 회사의 로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 내에서만도 5만5,000명의 사설탐정이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가 전직 연방수사국(FBI) 요원과 사설탐정으로 꾸려진 팀을 가동해 가짜 비아그라 유통조직을 색출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설탐정 천국은 이웃 나라 일본이다. 무려 6만명의 사설탐정이 활동하고 있으며 연간 수임 건수도 250만건에 달한다. 이 같은 사회적 배경 덕분에 1994년 만화잡지에 첫선을 보인 ‘탐정 코난’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연재되며 누적 발행부수가 2억부를 훌쩍 넘을 만큼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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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설탐정이 불법이다. 과거 탐정과 유사한 ‘흥신소’라는 사설기관이 있었지만 주로 불륜을 비롯한 사생활을 캐는 등 부정적 인식이 강해 1977년 아예 명칭마저 없어졌다. 현행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역시 사설탐정을 금지하고 있다.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헌법재판소가 탐정업 금지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몰래카메라 등으로 사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만큼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관련 사업을 금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분간 우리나라에서는 푸아로나 홈스 같은 명탐정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두환 논설위원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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