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尹혁신안에...당국도, 시장도 '부글부글'

금융위 "충분한 논의 없어" 발끈

지점폐쇄 모범규준 제정도 시대착오

은행 "경영계획 다시 짜야할 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일 발표한 ‘금융감독 혁신과제’가 당국과 시장 양쪽에서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앞세워 경영 전면에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관치(官治)의 그림자가 또다시 짙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당국 대로 혁신안 발표 이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돼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다.


당장 은행권에서는 “경영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라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이 혁신안을 통해 은행들이 지점을 닫을 때 사전영향평가를 의무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모범규준 제정을 추진하기로 해서다.

국내 주요 은행들은 장기 경영계획에 따라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면서 매년 단계적으로 점포 수를 줄여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뒀는데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이 같은 플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조치가 2000년에 폐지된 ‘지점 폐쇄 신고제’를 부활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직 모범규준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점 폐쇄를 검토하는 시점부터 어떤 식으로든 금융당국에 대한 사전고지 의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들 사이에서는 당장 내년도 중기 경영계획부터 손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금감원 혁신안이 나온 9일 임원회의를 소집해 혁신안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지점 폐쇄 때 금융접근성 개선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수준에서 규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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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의 과소 지급과 관련한 분쟁에 일괄구제제도를 적용하기로 한 것과 암 환자 요양병원 입원금 지급 문제도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경영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분류된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회사에 종합등급을 매겨 ‘배드 리스트(bad list)’를 공개하기로 한 것도 사실상 보험사를 겨냥한 대책으로 파악된다”며 “소비자 보호도 좋지만 자율 경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상급 기관인 금융위도 혁신안 내용에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혁신안 내용을 윤 원장 발표 직전 금융위에 알려주기는 했지만 ‘각론’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법과 같은 법 개정은 물론이고 모범규준을 하나 만들 때도 그동안에는 금융위 주도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세부 방안을 논의했는데 앞으로 혁신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상 금융위가 금감원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불편한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사전에 혁신안을 알려준 것과 혁신 대책에 대해 양 기관이 논의를 거친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혀 향후 혁신안 추진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이 금융소비자보호처에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조직을 확대하고 나선 것도 양측의 주도권 다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존에 없던 소비자금융국을 이달 중 신설하는 금융위에 대해 금감원이 맞대응에 나선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감독체계 개편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기까지는 양측의 신경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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