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 나흘 만에 2,000억달러(약 223조원)어치의 관세 폭탄을 꺼내 들며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예고한 6,000여개의 관세 부과 품목에는 첨단 정보기술(IT) 관련 제품뿐 아니라 냉장고·타이어·화장지·의류·고등어·참치 등 소비재는 물론 미국의 첨단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국산 희토류까지 포함돼 중국뿐 아니라 미국 내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이 번번이 맞서자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미국 측 의지로 해석되지만 중국이 곧바로 보복을 예고하면서 ‘강대강’ 충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양국의 무역전쟁 규모가 확대되고 장기화할수록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어 시장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 6,031개 품목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미국의 관세부과 조치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가 던진 초강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발효한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에 중국이 곧바로 보복 조치에 나서자 미국이 이번에는 관세 부과 규모를 중국의 대미 수출액(5,050억달러)의 절반까지 확대해 기선 제압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지난 1년간 트럼프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중국에 불공정 행위를 중단하고 시장을 개방해 진정한 시장경쟁에 임하라고 촉구해왔다”며 “불행히도 중국은 태도를 바꾸지 않아 미국 경제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관세 부과 배경을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측의 협상이 좀처럼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2차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추가 관세에 대한 실제 시행까지 2개월간의 시차를 둔 것도 중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미 정부에 따르면 2,000억달러 규모의 제품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는 다음달 30일까지 2개월간 공청회와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부과 대상 목록을 확정한 뒤 발효될 예정이다. 중국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시간인 셈이다. 여기에 미국 내 기업의 의견을 들으면서 자국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벌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방위 품목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관세 부과 예고에 미국 내에서는 자국의 출혈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USTR이 공개한 200쪽 분량의 관세 리스트에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부터 풍력 터빈과 군사 장비까지 첨단 제조업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략 자원인 희토류가 포함됐다며 희토류에 대한 관세 부과가 미국 제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 소매산업지도자협회(RILA)는 이날 성명에서 “대통령은 중국에 고통을 주고 미 소비자에게는 최소한의 고통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 미 각계가 벌을 받는 대상 중 하나가 됐다”고 비난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관세는 세금”이라며 물가 인상을 초래할 관세 부과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중국을 굴복시키겠다는 의도와 달리 중국은 미국의 발표에 관세 맞불 대응과 함께 관세 이외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강대강’으로 응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추가로 관세 부과에 나서면 중국도 질적 및 양적 수단을 포함한 각종 필요한 조치를 종합적으로 취해 중국 국익과 인민 이익을 결연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연간 대미 수입액이 1,300억달러 규모로 미국이 이번에 부과할 2,000억달러 규모의 관세에 동등한 규모, 강도로 대응하기는 어렵게 된 만큼 미국 제품의 통관을 늦추거나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감독검사를 강화하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채 매각, 대북제재 완화 등의 방안이 동원될 수도 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양국의 무역전쟁이 확대될수록 한국을 포함해 수출 의존적인 아시아 국가들이 특히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가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주요 품목의 수출 규모를 합산한 결과 멕시코가 802억달러(89조9,000억원)로 가장 크고 한국이 570억달러(63조9,000억원)로 두 번째인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