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7월 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를 도입해 일감 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기업에는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처음 도입하는 내년에는 경영권에 개입하지 않지만 오는 2020년 이후에는 경영 참여를 포함해 강도를 높일 예정이다.
12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을 17일 공청회를 거쳐 26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하고 내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우선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재벌 오너 일가가 사익을 편취한 기업에 경영진 면담 및 이사진 선임 반대 등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특정 회사에 기회나 수익을 몰아주거나 오너 일가 지배 기업과 그룹 내 계열사 간 불공정한 계약을 맺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의 주요 주주로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주주 가치를 훼손한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 횡령·배임, 과도하게 임원 보수를 높인 기업도 주주권 행사의 대상이 된다.
국민연금은 사안이 발생한 투자기업에는 이사회·경영진 면담을 통해 개선대책을 요구해 기업조치사항을 확인하고 비공개 서한을 발송하는 등 비공개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비공개 대화에도 해당 기업이 개선하지 않으면 의결권 행사와 연계해 주총에서 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사익 편취 행위를 주도한 이사 임원이나 사외이사, 감사의 선임을 반대하기로 했다. 또 이들 기업을 블랙리스트로 부르는 공개대상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해 외부에 공표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사가 횡령·배임 등으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우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오너 갑질, 사익 편취,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에 올랐던 대한항공에 대해 국민연금이 공개서한을 보낸 적은 있으나 대한항공은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장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강화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에는 경영관여에 해당할 수 있는 주주권 행사에 나설 방침이어서 여파가 크다. 사외이사(감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다른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표 대결을 벌이는 행위, 경영참여형 펀드를 위탁 운용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출범할 수탁자책임위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수탁자책임위는 상설 기구인데다 강력한 주주권 행사를 주장해온 시민단체 등의 추천인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전보다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새로운 기금운용본부장(CIO) 직무대행으로 이수철 운용전략실장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총괄하고 있다.